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0일 군사법원법 개정과 관련해 공청회를 열고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 공청회에서는 군 내 범죄의 90% 이상이 일반범죄이고 독립성을 위해 적어도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보통군사법원에 접수된 사건(2839건) 가운데 군사 관련 범죄는 전체의 8%(228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92%는 민간에서 재판을 진행해도 문제 없는 교통·폭력·성범죄 등 일반 사건이었다.
반면 반대측 전문가들은 군 조직 특수성 이해도 측면에서 군사법원 제도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환 충남대학교 조교수는 “전시 체제에서는 전투 참보단에 숙련된 군판사가 주둔해야 군 사법체계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현재 군에서는 부대 지휘관이 검찰 수사뿐 아니라 군사 법원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휘관은 군 검사에 대한 지휘, 감독권을 갖고 있다. 군검찰은 구속영장도 지휘관 승인을 거쳐야 청구할 수 있다. 또 지휘관은 군사법원 재판관 지정, 임명권을 갖는다. 군사 법원이 판결한 형량 감경까지 가능하다. 사건을 은폐, 축소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군에서 발생한 성비위 사건은 2019년부터 지난해 1년 새 28% 급증했지만 가해자가 실형을 받은 사건은 전체 사건의 1%에 불과하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같은날 국방부와 각 군에서 제출받은 ‘성폭력 사건 처리현황’ 자료에 따르면 실형 선고 건수는 2019년은 338건 중 12건, 지난해에는 471건 중 5건에 불과했다.
국회에서는 군사법원법 개정안 여러 건이 계류 중이다. 국방위원장인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고 국방부 장관 소속의 군사항소법원을 신설해 항소심을 이관하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비군사 범죄에 대한 재판권을 민간법원으로 이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에는 군단급 이상 부대에 설치된 군사법원(1심 담당)을 국방부 산하로 통합하는 내용을 비롯해 고등군사법원(2심 담당) 폐지와 항소심은 민간법원이 담당하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지난 3월 충남 한 공군 부대에서 근무하던 A중사는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 당했다며 군사경찰에 신고했다.
공군 검찰에 사건이 송치된 것은 한 달여 후인 지난 4월에서였다.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받은공 군검찰은 A중사가 관사에서 숨진 채 발견된 9일 뒤에서야 가해자로 지목된 B중사를 조사했다. A중사는 사건 발생 당일부터 피해사실을 상관에게 알렸다. 가해, 피해자 분리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부대 상관들로부터 조직적 회유, 협박에 시달렸다.
성추행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피해자 국선변호사로 지정된 군법무관은 A중사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유족은 공군본부 법무실 소속 군 법무관인 B씨가 A씨와 단 한 차례도 만나지 않고 전화와 문자메시지로만 얘기한 점(직무유기), 신상정보 등을 유출했다면서 고소한 상태다. B씨는 신상 유출 혐의가 사실무근이라며 해당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 기자 등을 고소하기로 했다.
양성평등센터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군 지침상 부사관 이상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은 최단 시간 내에 상세 내용을 국방부에 보고하게 돼 있다. 그러나 공군 양성평등센터는 성추행 사건 한 달 뒤에나 국방부에 보고했다. 이갑숙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은 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지침을 잘 몰랐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황당한 답변으로 공분을 샀다.
군인권센터는 지난 8일 성명을 내 “군에서 성폭력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부대 구성원 모두가 한 뜻으로 가해자를 걱정하고 옹호하는 일에 전념하기 때문”이라며 “만연한 군 성폭력 사건은 비군사범죄 사건 수사와 재판을 민간으로 이양하지 않는 이상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석되기 어렵다. 지금이 바로 군에 오래도록 자리한 가해자 중심의 문법을 해체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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