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전씨는 같은날 오전 자택 앞 골목을 산책했다. 보폭이 다소 좁고 속도가느린 것 외에는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은 없었다.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다. 혼자 뒷짐을 진 채 걷던 전씨는 한국일보 기자를 발견하고는 “당신 누구요!”라며 고함을 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정정한 모습이었다.
전씨는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나 알츠하이머 투병 등을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전씨의 산책이 목격된 날도 광주광역시에서 항소심 두 번째 재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전씨는 지난 2019년에도 건강상 이유로 재판 불출석 사유서를 냈지만 지인들과 강원도 홍천에서 골프 치는 모습이 공개됐다. 같은해 12월12일에는 서울 한 중식당에서 1인당 20만원이 넘는 호화 오찬 회동을 하며 정정한 모습으로 대화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는 전씨 모습을 직접 찍어 공개한 임한솔 당시 정의당 부대표는 “걸음걸이, 스윙하는 모습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기력이 넘쳐 보였다”며 “골프장 캐디들도 본인들은 가끔 타수를 까먹거나 계산 실수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씨는 본인 타수를 절대로 까먹거나 계산을 헷갈리는 법이 없다고 한다. 캐디들도 이 사람이 치매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하고 있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씨 건강 상태에 의구심이 드는 부분은 이것뿐만 아니다. 전씨 변호인은 재판에서 지난 2013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인지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방금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2016년 신동아와의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대권을 잡기 위해 12.12 쿠테타를 일으켰다는 의혹과 계엄군 발포 명령 책임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세히 해명했다. 또 2017년 4월에는 문제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전씨 재판 출석 여부는 사실상 재판부 의지에 달려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씨는 그동안 “고령으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등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원거리 이동이 어렵다”는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전씨에 적용된 사자명예훼손 형량은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이다. 형사소송법 제277조에서 정한 피고인의 불출석 인정 사유에 해당한다. 따라서 불출석 허가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구인장을 발부해 강제 구인할 수 있다. 재판부가 전씨에 대해 구인장을 발부한 것은 지난 2019년 1월 단 한차례였다. 또 지난 5월에는 법원이 전씨 측에 소환장을 발송하지 않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재판이 또다시 연기됐다.
재판부는 국감장에서 전씨에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광주지법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씨처럼 불출석 재판을 허가한 사례가 또 있는가”라고 질의했고 박병칠 광주지법원장은 “불출석 허가 사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사자명예훼손죄의)법정형은 경미 사건 기준에 해당할지 모르지만 사건이 갖는 의미, 피고인의 태도, 국민감정을 볼 때 저는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불출석 허가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국민 비판을 따갑게 생각하셔야 한다”고 일침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 역시 “일반인의 경우 본인 재판에 불출석 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흔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면서 “공판 기일에 피고인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형량이 높아지는 등 불이익이 따를 수 있는 만큼 변호인으로써도 꼭 출석하기를 권한다. 과연 전씨가 아닌 일반인이었어도 재판부가 당사자 없이 재판을 진행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5·18 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5일 성명을 내고 “재판부는 재판 출석을 포기한 피고인 전두환의 방어권을 과도하게 보장해줘서는 안 된다”고 규탄했다. 이어 “재판부는 인정 신문 절차도 없이 전씨의 불출석을 허가했다”며 “자의대로 첫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는데도 아무런 불이익과 제재 없이, 전두환 측이 원하는 방식과 내용대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