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지금까지 국방부와 각 군에서는 폭행, 가혹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
6일 정례브리핑에서 나온 국방부 입장이다. 넷플릭스 ‘D.P.’는 단순히 시청자들이 즐겁게 소비하고 끝나는 콘텐츠를 넘어,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군대 부조리와 가혹행위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자극한 것. SNS에선 군 내 악습과 경험담에 대한 군필자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다수 언론에선 드라마의 배경이 된 2014년과 현재의 군대가 어떤지 들여다봤다. 현재 군인이거나 입대 예정인 가족들의 걱정도 터져 나왔다. 결국 국방부까지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난 한준희 감독은 “지금은 없는 일로 보인다면 정말 다행”이라면서도 “우리가 겪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일이라고 해서 없었던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룬 ‘D.P.’를 위해 배우 캐스팅 과정도 신중하게 진행했다. 투톱을 이룬 배우 정해인과 구교환은 처음부터 캐스팅 1순위였던 배우들이었다. 한준희 감독에게 ‘D.P.’에서 함께한 배우들, 그리고 군대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안준호 역할에 정해인, 한호열 역할에 구교환 배우가 출연했어요. 전혀 색깔이 다른 두 배우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해인 배우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배우고, 구교환 배우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예요. 두 분 다 제가 처음 대본 드린 배우입니다. 그리고 바로 답을 주셨어요. 전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매력을 보고 싶었어요. ‘D.P.’ 전에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해왔던 작품과 다르니까요. 전 정해인과 구교환이 붙어서 충돌하는 게 정말 재밌고 어울린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Q. 안준호는 원작에서 상병이었지만 드라마에선 이병으로 설정이 바뀌었어요. 한호열은 원작엔 없는 캐릭터고요.
“원작에서 느낀 좋은 감정들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영상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어요. 준호가 사회에 있다가 입대하고 자대배치를 받아서 D.P.까지 가는 과정을 묘사해서 보시는 분들이 이 인물로 같이 작품 속에 들어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준호와 짝을 이루는 한호열은 원작에서 상병 준호가 갖고 있는 모습으로 재밌는 아이러니를 일으킬 수 있을 것 같았죠.”
Q. 조석봉 일병 역할을 맡은 조현철 배우는 감독님의 데뷔작 ‘차이나타운’에서도 같이 했던 배우죠.
“조현철 배우와 함께 ‘차이나타운’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때 이 배우는 더 많은 걸 보여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조현철 배우를 생각하면서 대본을 썼어요. 조 배우가 대본을 받아갔을 때, 혹시 출연을 고사하면 역할을 바꾸려고 했어요. 역할을 배우에 맞추기보다 배우에 역할을 맞춰서 썼으니까요. 조현철 배우는 폭발적인 것도 보여주고 감정선도 보여줄 수 있는 배우예요. 그래서 같이 작업했습니다.”
Q. 조석봉에게 ‘오타쿠’란 설정을 부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현철 배우가 실제로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조석봉이란 인물의 설정이 필요했어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아이들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좋은 사람. 착하고 선의를 갖고 있어도,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조현철 배우가 그림을 잘 그려요. 작품 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굉장히 잘 소화했어요.”
Q. ‘D.P.’ 출연 배우들의 열연에 대해 좋은 반응이 많아요.
“감독으로서 민망할 정도죠. 저는 보고 몇 마디 첨언이나 하는 거지 연기는 배우들이 하는 거니까요. 배우는 늘 신기한 존재 같아요. 정해인 배우와 구교환 배우는 연기하는 방식, 표현하는 스타일이 정말 다르잖아요. 그동안 해왔던 작품의 결도 다르고요. 그럼에도 둘이 같이 연기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존중하는 게 느껴져서 재밌고 좋았어요. 서로에게 배우고 싶어 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서 저는 굉장히 만족합니다.”
Q. 시대가 변해도 군대 내 부조리와 가혹행위가 변하지 않고 벌어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종빈 감독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좋아했어요. 전 특정 누군가의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시스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누군가가 책임지고 뭔가를 바꿔야 하는 게 맞을 수 있겠죠. ‘D.P.’ 마지막 회 소제목이 ‘방관자들’이에요. 저부터도 방관하지 않고 늘 생각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교훈적으로 그린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Q. ‘D.P.’처럼 사회적인 논의를 일으키는 점이 ‘좋은 작품’의 맥락에 포함될까요.
“사회적인 이야기는 정말 중요하고 당연하죠. ‘D.P.’는 제 세 번째 작품입니다. 매번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 항상 질문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답은 제가 감히 내릴 수는 없겠죠. 하지만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건 연출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중요해요. 항상 ‘우린 잘 하고 있는 것인가’라고 얘기하죠. 뭔가 굉장히 거대한 담론을 그리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런 이야기를 ‘D.P.’를 통해 조금이라도 느끼셨다면 다행인 것 같습니다.”
Q. 군 부대의 실상을 드러내는 좋은 의도를 다루는 작품이지만, 반대로 군 가혹행위 피해자들에겐 다시 트라우마를 안기는 드라마의 생생한 묘사가 불편할 것 같다는 반응도 봤습니다. 이에 대한 톤 조절을 어떻게 하려고 하셨나요.
“정말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럽습니다. 그러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밸런스 유지가 제일 중요했습니다. 묘사할 때 필요한 수위만 보여주는 게 맞고, 더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묘사를 건너뛰는 것 또한 작품의 결에서 모순되는 지점이죠. 그 밸런스를 잡으려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보시면서 불편하셨던, 마음 아프셨던 분들이 있으면 저희가 부족했던 면이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Q. ‘D.P.’ 시즌2가 제작되면 어떤 이야기를 그리고 싶으신가요.
“사실 어렴풋하게 김보통 작가님과 논의한 내용이 있어요. 다만 아직 구체화해서 언급할 만큼 텍스트나 이미지가 명확하진 않아서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D.P.’를 만들며 주시하려고 했던 것과 영화적인 완성도를 챙기면서 만들 수 있으면 제일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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