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페미니즘 아웃!’(OUT) 이라는 스티커가 붙었다. 사회적 약자인 임산부에 대한 배려 문제에까지 젠더 갈등 불똥이 튀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내가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니”라는 글과 함께 두 장의 사진을 지난 15일 올렸다. 서울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위 앰블럼에 ‘페미니즘 OUT!’라고 크게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는 모습이다.
이 스티커에는 “임산부 있으면 비켜주면 될 거 아냐? 근데 나는 노인, 장애인한테 양보하고 싶거든? 배려도 강요돼야 하나? 심지어 누구한테 배려해야 하는 지까지 강요당해야 해?”라는 내용이 적혔다.
해당 트윗은 17일 1만9000회 이상 리트윗(퍼가기)되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는 ‘임산부석’이 이름을 올렸다.
SNS상에는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것은 아이, 노인 같은 ‘신체적 약자’이기 때문이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며 황당해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임산부석을 임산부에게 양보해주는 행위를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는 게 어이없다” “임산부석을 여성전용석으로 이해하고 성별갈등 운운하는 게 놀랍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임산부에 대한 배려 인식이 없는 나라에서 저출산 운운하는 게 어이없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울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국가적 문제인 저출산 해결에 일조하고 임산부를 배려하는 대중교통문화 정착을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기준 지하철 1~8호선에 총 7064석이 운영 중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이날 제공한 임산부 배려석 관련 연도별 민원 현황에 따르면 △2018년 2만7678건 △2019년 1만3021건 △2020년 8771건 △2021년 1~8월 5091건으로 집계됐다.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갈등은 일부 시민이 배려를 ‘강요’한다며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산부가 아닌 이들 중 일부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지난 10일 한 여성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자 장애인을 성추행범으로 허위 신고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2019년에는 지하철 4호선 임산부 배려석에 ‘엑스’(X)자 낙서가 수차례 발견됐다. 같은해 지하철 5호선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여성에게 한 50대 남성이 ‘여기 앉지 말라잖아 XXX이’라고 욕하며 발목, 정강이, 종아리를 발로 차는 사건이 있었다. 이 여성이 임산부임을 밝혔음에도 폭언과 폭행이 계속됐다.
지난 2019년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지하철 1~8호선 이용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시민 10명 중 4명(39.49%)이 임산부가 아닌데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 23.15%, 남성 19.17%였다. 앉은 이유로는 절반 이상(54.64%)이 ‘임산부 배려석은 알았으나 비워져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어 △‘강제가 아니라 배려석이라서’ (26.86%) △‘비임산부도 앉아 있어서’ (8.86%) △‘차별이라 느껴져서’(5.42%), △‘임산부 배려석을 몰라서’(4.22%) 순이었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 본부장은 “여성가족부 폐지 문제에 대선 후보들이 입장을 표명하는 등 정치·사회·문화 여러 분야에서 성별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연장 선상에서 일반 시민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이 타겟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임산부를 배려하는 이유는 임산부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 임산부의 건강권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임산부 배려석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아니다. 여러 지자체에서 시범 사업과 오랫동안 홍보를 거쳐 어느정도 국민적 합의로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모든 사람이 지하철에서 앉아 갈 수 있는 권리가 있음에도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것은 우리보다 더 약자인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노인이 될 수도 있고 태아를 가진 임산부가 될 수도 있다”면서 “약자를 위한 배려를 ‘나보다 더 혜택을 본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일부 있는 것 같다. 인권, 권리에 대한 사회 인식이 아직은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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