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 귀환
T1(LCK)의 ‘페이커’ 이상혁(25)이 2019년 이후 2년 만에 롤드컵 무대를 밟는다. 그는 LoL e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LCK에서 9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린 이상혁은 롤드컵에선 우승 3번, 준우승 1번을 거뒀다. 롤드컵에서 3회 이상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현역 선수 가운데 이상혁이 유일하다. 과거 그의 팀 동료였던 ‘뱅기’ 배성웅이 3회 우승을 달성했으나 2017년 은퇴했다.
이상혁의 복귀 소식을 접한 해외 팬 및 관계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LoL e스포츠 공식 인스타그램은 ‘왕이 돌아왔다’며 이상혁의 복귀를 조명했고, 여러 해외 매체들도 이상혁의 6번째 롤드컵 무대를 주목하는 보도를 내놨다. 유럽 현지는 이상혁의 등장으로 요란하다. 해외 스트리머들은 유럽 지역 LoL 솔로랭크에 상륙한 이상혁과 조우한 소감을 앞 다퉈 콘텐츠로 제작하고 있다.
이상혁이 개인 통산 4번째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을 지도 관심을 모은다.
2013년과 2015년, 2016년에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이상혁은 2017년 준우승 이후엔 결승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9년 롤드컵에선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으나 4강에 머물렀다. 프로게이머의 전성기는 20~23세 전후다. 한국 나이로 26살인 이상혁은 노장으로 분류된다.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보여주고 있지만 상대를 압도적으로 찍어 눌렀던 전성기 기량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상혁이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을 극복하고, 다시금 세계 최정상에 설 수 있을지 지켜보자.
◇ ‘칸’ 김동하의 라스트댄스
담원 기아(LCK)의 ‘칸’ 김동하(25) 만큼 국제 대회 우승에 목마른 선수가 또 있을까.
김동하는 한국 최고의 탑 라이너를 꼽을 때 1순위로 거론되는 선수다. 올 서머 시즌을 포함해 LCK에서 총 6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탑 라이너 가운데선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하지만 유독 국제 대회에선 우승과 연이 없었다. 2018년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준우승, 2019년 롤드컵 4강 진출이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이다. 당장 지난 5월 열린 MSI에선 중국의 RNG에게 2대 3으로 패해 아쉽게 우승을 놓친 바 있다.
김동하에겐 이번 롤드컵이 마지막 도전이다. 그는 2021시즌을 앞두고 병역 문제 등으로 인해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SK 텔레콤 T1(현 T1)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김정균 감독의 만류에 담원 기아에서 현역 연장을 택했다. 그는 시즌을 치르는 줄곧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동하와 담원 기아 선수단은 이번 롤드컵에서 ‘라스트 댄스’를 준비하고 있다.
김동하는 서머 시즌 우승 직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롤드컵은) 선수 생활 마지막 대회가 될 것 같다”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해서라도 우승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팀 동료인 ‘고스트’ 장용준은 “이번 롤드컵은 동하 형과 함께 나가는 마지막 기회”라며 “지난 MSI 때 우승을 못 시켜줘 많이 미안했다. 이번에는 꼭 우승시켜 같이 웃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다”고 열의를 불태웠다. 김동하의 마지막 도전은 과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
◇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으로
옛 동료들 간의 불꽃 튀는 맞대결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플레이-인 스테이지 개막전 한화생명과 LNG의 대결에선 ‘쵸비’ 정지훈(20‧한화생명), ‘타잔’ 이승용(22‧LNG)이 조우한다. 이들은 2019년까지 LCK 그리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2020시즌 팀을 떠난 두 선수는 이승용이 2021시즌 중국 리그에 진출하면서 이번 롤드컵에서야 맞대결이 성사됐다.
한 때 손을 맞잡고 LCK를 호령했던 두 선수인 만큼, 재회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승용은 롤드컵 진출 확정 뒤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쵸비, 바이퍼와 꼭 만나고 싶다”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고, 정지훈은 지난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출국 전 인터뷰에서 “타잔 선수가 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는데 날 만나면 힘들 것”이라고 선전포고해 팬들의 기대감을 자아냈다.
그룹스테이지에서의 맞대결은 불발 됐지만 토너먼트 일정에 따라 정지훈과 ‘바이퍼’ 박도현(20‧EDG)의 재회가 성사될 가능성도 있다. 이승용‧정지훈과 2019년까지 그리핀에서 뛰었던 박도현은 2020시즌 한화생명으로 이적했다. 당시 DRX 소속이었던 정지훈과 국내 리그에서 수차례 맞붙었던 그는 2021시즌엔 중국 리그로 건너가 서머 시즌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핀 내에서 ‘캐리’ 라인을 맡았던 두 선수인 만큼, 맞대결 시 불꽃 튀는 퍼포먼스를 연출할 것으로 보인다.
‘담원 기아-FPX 더비’도 관심을 끈다.
담원 기아와 FPX 간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담원 기아의 탑 라이너 김동하는 지난해까진 FPX 소속이었다. 반대로 FPX의 탑 라이너 ‘너구리’ 장하권(22)은 지난해 담원 기아에서 뛰었다.
양 팀의 맞대결은 생각보다 이르게 성사됐다. 그룹스테이지 A조에 함께 속하면서 옛 동료와 대회 초반부터 진검 승부를 벌이게 됐다. 옛 동료와의 맞대결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두 팀인 만큼 보장된 흥행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하는 “탑 라이너만 바뀐 대결이라 이야깃거리가 더 많은 거 같다. 보시는 분들이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상혁과 ‘스카웃’ 이예찬(23‧EDG)의 맞대결, ‘룰러’ 박재혁(22‧젠지e스포츠)과 ‘코어장전’ 조용인(27‧팀 리퀴드)의 재회 등도 그룹스테이지에서 벌어져 흥미로운 그림이 예상된다.
◇ 올해도 우승은 LCK 혹은 LPL?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치러진 롤드컵에서 한국은 총 5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은 2018년과 2019년 2차례 정상에 올랐다. 관계자들은 이번 롤드컵 역시 한국과 중국이 우승팀을 배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LCK의 담원 기아, LPL의 EDG, FPX가 유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진다.
2011년 초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유럽 지역은 1시드 매드 라이온즈에 기대를 걸고 있다. D조에 속한 매드 라이온즈는 대진을 볼 때 무난히 8강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9년 결승 무대를 밟은 G2 e스포츠 이후 2년 만에 결승 진출을 노린다. 만만찮은 저력을 갖춘 팀이라 경계해야 한다.
LCK, LPL, LEC(유럽)와 함께 4대 리그로 분류되는 LCS(북미)는 명예 회복이 절실하다.
LCS는 4대 리그 가운데 MSI와 롤드컵 우승이 없는 유일한 지역이다. 꾸준히 하락세가 이어져 2019년부터는 롤드컵 토너먼트(8강)에 단 한 팀도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 5월 열린 MSI에서도 스프링 시즌 우승팀인 클라우드 나인이 대회 2일차에 0승 4패를 기록하는 등 럼블 스테이지에서 탈락하며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이번 대회 역시 4대 리그 가운데 전력이 가장 저평가 되고 있어 험난한 일정이 예상된다.
중소 리그인 PCS(태평양 연안)는 이번 대회 다크호스로 꼽힌다. 특히 PCS 소속의 PSG 탈론은 지난해 롤드컵 그룹스테이지에서 우승 후보 징동 게이밍(중국)을 잡아내는 등 화제를 모았다. 지난 MSI에서도 RNG(중국)와 클라우드 나인을 꺾고 준결승에 진출하며 저력을 보였다. 유럽의 프나틱, RNG와 같은 조에 속한 이번 대회에서도 PSG 탈론이 또 한 번의 이변을 보여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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