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GIGDC 2021 제작부문 일반부 대상을 수상한 ‘라핀’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다섯 토끼들의 모험 이야기를 2D 플랫포머 장르를 통해 풀어낸 작품이다. 순수 플래포밍의 재미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호작용과 수집 요소들을 곁들여 결이 다른 즐거움을 더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풍성한 스토리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따라가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맵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를 찾아 푸는 과정은 ‘라핀’만이 주는 재미다. 완성도가 돋보이는 동화적인 아트워크와 음악은 이런 세계관에 몰입을 더해, 게이머를 주인공 ‘리베’의 모험에 끌어들인다.
스튜디오 두달은 김민정(25‧기획 및 시나리오), 이규원(26‧프로그래머) 공동 대표와 송지원(23‧프로그래머), 진혜림(22‧아트), 김미주(21‧아트), 정가은(20‧아트) 등 6명으로 구성된 개발팀이다. “대상을 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두 대표를 지난 13일 관악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안녕하세요. 팀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 : 저희는 2D 플랫포머 게임 ‘라핀’을 개발 중인 스튜디오 두달입니다! 저희가 2019년 12월 처음 개발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겨울 방학 두 달 동안 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두달인데, 놀랍게도 거의 2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함께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웃음).
게임 개발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이 : 저는 2015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이미 게임에 흥미를 갖고 있었어요. 학교 동아리에서부터 게임을 만들고 있던 상황이었죠. 스튜디오 두달과 함께 하게 된 건, 대학교 수업 중에 게임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 때 민정이를 처음 만나 팀플을 했는데, 학기가 끝날 때 즈음 저한테 게임을 같이 만들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이후 차례차례 한 분씩 영입하다보니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김 : 게임을 많이 해보긴 했어도, 제가 국어 국문학과라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볼 기회는 없었어요. 소설 쓰고, 영화를 찍곤 했었는데 수업을 들으면서 게임을 만들어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 때 게임이 줄 수 있는 매력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이렇게 개발을 하고 있네요.
이번에 GIGDC 2021 제작부문 일반부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소감을 들려주세요.
김 : 솔직히 저희 ‘라핀’이 대상을 탈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만큼 더 열심히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 저도 대상을 받게 돼서 너무 좋았어요. 우리 게임에 대해 많은 기대를 보내주시는 것 같아서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라핀’은 어떤 게임인가요?
김 : ‘라핀’은 액션이 배제된 순수 2D 플랫포머 게임이에요. 귀여운 토끼가 주인공이고요, 공원 땅 밑에 굴을 만들고 살고 있던 토끼가 어느 날 시작된 인간들의 공사로 인해 공원을 떠나서 새롭게 살 곳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얘기에요.
이 : 여기서 액션이라는 건 전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전투를 배제한 이유로는 먼저 상업적으로 다른 플랫포머 게임과 차별화 시키는 것에 포인트가 있고요. 또 전투를 배제해야 플랫포머 본연의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밖에도 액션을 통한 성장 요소를 줄임으로써 쉽게 게임을 시작할 수 있고, 진입 장벽을 낮추고도 싶었죠. 대신 어드벤쳐성을 많이 높이려고 했어요. 기존의 유명한 어드벤쳐 게임인 ‘언더테일’의 방식들을 2D 플랫포머로 옮겨와서, 플레이어가 직접 점프를 하고 벽을 타고 다니면서 세계를 탐험하는 시스템에 중점을 뒀습니다.
탐험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세계관도 중요하잖아요. 특히 많은 공을 들였을 것 같아요.
김 : 맞아요. 기본적으로 토끼들이 탐험을 하는 내용이에요. 토끼들이 동경하던 토끼 탐험가가 있었다던가, 토끼들이 옛날에 살았던 굴에 대한 설정이라던가, 토끼들의 과거 사연이라던가, 이런 부분들을 세부적으로 깊게 설정을 했어요. 메인 스토리만 놓고 보면 보이는 부분이 적겠지만 플레이어가 원한다면 수집 요소들을 통해서 소소한 과거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풍부한 스토리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김 : ‘라핀’의 특징 중 하나가 5명의 토끼 캐릭터가 함께 모험을 떠나는 거예요. 각자 다른 성격과 특성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죠.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모험길에서 다른 토끼들과 갈등을 겪거나 시련이 있을 수 있지만, 화합하고 사랑으로 함께 나아가는 그런 얘기를 그려보고 싶었죠. 메인 스토리와 수집형 스토리를 통해 이 부분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김 팀장님은 여러 문학상을 통해 데뷔한 작가이기도 한데요, 소설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과 게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김 :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외롭지 않아요(웃음). 소설은 혼자 쓰고 고민하는 시간이 긴데, 게임은 제가 메인 시나리오 작가이긴 하지만 팀원들과 어떻게 구현할지 회의를 하면서 시나리오가 바뀌는 경우도 잦아요. 함께 좋은 결과물을 향해 나아가는 게 재미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소설 같은 경우는 독자가 내 글을 성의 있게 끝까지 읽는 게 전제가 돼요. 하지만 게임 스토리는 아예 읽지 않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게임 스토리를 쓸 때는 어떤 플레이어도 글을 읽지 않는다고 가정해요. 플래포밍을 위해 스토리를 스킵 하더라도 1초 안에 모든 걸 파악할 수 있게 대사도 단문으로 쓰고 직설적이고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해요.
여러 행사를 통해서 게이머 분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때마다 들었던 피드백이 ‘대사가 길어요’, ‘너무 많아요’ 등등이었어요(웃음). 하지만 스토리를 아예 읽지 않으면 아쉬우니까 최대한 스토리를 읽게끔, 흥미를 느끼게끔 게임에 자연스레 녹여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라핀’만이 가진 개성, 매력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려요.
이 : 액션이 없다보니 보다 편하게 게임을 시작할 수 있고,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덜 받으실 거예요. 실제로 조작키도 많이 줄여 두 개 밖에 되지 않아요. 게임 조작에 익숙해지고 나면 ‘라핀’의 세계를 탐험하면서 내가 한 행동들이 전부 무의미하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스토리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설계 중이에요. 탐험하는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김 : 저는 개성 넘치는 토끼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주인공 ‘리베’는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모습을 한 친구고, ‘호세’는 밝고 명랑하고 주변에 관심이 많은 친구에요. 반면 ‘몽블랑’은 굉장히 과묵하고 진중한 친구죠. 다른 토끼 말에 관심이 없고 기계를 만지는 걸 좋아해요. ‘대장’은 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다른 토끼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많아요. 리베를 굉장히 많이 아끼죠. ‘비앙카’는 글을 쓰는 콘셉트의 토끼에요. 생각이 깊고 이성적이라 무리의 정신적 지주랍니다.
플레이어가 조종이 가능한 주인공 리베 외 나머지 토끼는 어떤 방식으로 게임에 영향을 미치나요?
김 : 데모 버전에선 공개가 안 됐지만 나머지 토끼들은 메인 스토리나 플래포밍 상에서 리베를 도와주거나, 혹은 리베가 다른 토끼들을 도와줘야 되는 등 서로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 중이에요. 또 플래포밍을 하던 와중에 리베가 다른 토끼들과 잡담을 하거나 선물을 줄 수 있는데요, 이에 따라 스토리에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어요. 조작할 수 있는 캐릭터는 리베 뿐이지만, 친구 토끼들이 있기 때문에 홀로 플레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실 거예요.
토끼 얘기를 하다 보니, 토끼가 왜 주인공인지 궁금해지네요.
김 : 서래 마을 몽마르뜨 공원에 친구랑 같이 산책을 갔는데 토끼들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토끼가 마냥 귀여웠는데, 근처에 ‘토끼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알고 봤더니 사람들이 그 곳에 토끼를 정말 많이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유기 토끼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는데 너무 슬펐어요. 그래서 유기 토끼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유기 토끼가 처한 현실을 알리고자 만든 게임은 아니에요. 하지만 ‘라핀’을 플레이하고 스토리를 읽어가다 보면 이 토끼들이 버려졌단 사실을 알 수 있게 만들었어요.
‘라핀’을 개발하면서 힘들었던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 :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버그 등 수저 사항이 나올 때가 많이 힘들었고, 또 그런 게 있었어요. ‘라핀’에는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주인공을 쫓는 AI(인공지능)를 이식해야 했거든요. 다른 게임에서의 AI는 지형지물을 통과하는 유령 방식이라던가, 플레이어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게 ‘라핀’의 세계관과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쫓긴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족제비가 토끼와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도 이상하고요(웃음). 어떻게든 이 족제비한테도 생동감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서 AI를 만들었는데, 제 능력 범위 밖이었던 거죠. 수정을 거듭하면서 결국은 만들어냈는데, 지금도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 상태이지만 저한텐 정말 어려웠던 과정이었어요.
김 : 메인 기획이 세 번 정도 엎어졌어요. 2019년 12월부터 개발을 했는데도 ‘라핀’이 메인 기획으로 확정된 게 2020년 하반기였어요. 그동안 몇 만 줄의 대사를 썼는데 그걸 다 없애고 새로 쓰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몇 번이나 전체 시나리오를 바꾸다 보니 스스로도 옛 설정이랑 헛갈리고…. 예전에는 식량을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와서 토끼들과 대화를 하는 방식이 계속 반복 됐거든요, 확실히 재미가 없어서 어떻게 재밌게 풀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나온 게 지금의 세계관이에요. 지금은 성과도 좋게 나오고 있고 플레이어 분들도 만족하시는 것 같아서 보상 받은 기분이에요.
출시 전이지만 ‘라핀’은 이미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으신가요?
김 : 올해 부산에서 열린 ‘BIC 2021’에 전시를 했었는데, 작년에 ‘라핀’을 플레이 해봤던 분이 같은 게임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하시더라고요. BIC 2020에선 실망을 많이 했는데 올해는 몰라보게 재미있었다라고 말해주셔서 기억에 남아요.
정식 출시 전까지 어떤 부분을 더 다듬고, 추가하실 계획이신지 궁금합니다.
이 : 저 같은 경우는 비주얼적인 요소를 많이 업그레이드 하고 싶어요. 지금은 게임을 보면 움직이는 오브젝트들이 적어요. 화면의 공간감이나 활동감이 적은 편이에요.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수풀이 움직인다던가, 바람에 나무들이 움직이는 등의 공간감 같은 걸 많이 살리고 싶어요.
김 : 저는 어드벤쳐성을 더 강조하고 싶어요. 지금도 물론 포토카드를 모아서 타른 토끼 캐릭터의 과거 이야기를 본다거나, 플래포밍을 하면서 버려진 온실, 기물 같은 것들에 들어가고 정보를 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향후에는 조금 더 섬세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도록, 상호작용의 폭을 넓혀서 정말 이 공간을 탐험한다는 느낌이 들게끔 만들고 싶어요.
나중에 라핀을 접할 게이머들이 어떤 점에 집중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면 좋을까요?
이 : 조작이 쉬운 편이니까 부담 없이 실행해서 순수 플래포밍만이 가지고 있는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또 저희 게임엔 숨겨진 요소가 굉장히 많아요. ‘이 곳에 혹시 뭔가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정말 있도록 만들었거든요. 조작에 익숙해지고 난 뒤엔 이런 것들을 파밍하는 부가적인 재미를 느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튜디오 두달은 게이머들에게 어떤 개발팀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이 : ‘부담 없이 시작해서 눌러앉게 된 게임’이 저희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부담 없이 시작 하고 게임을 플레이 하다 보니, 볼거리가 많고 숨겨진 요소가 많아서 오랜 시간동안 플레이이 하게 되는 그런 게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김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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