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인디 게임제작 경진대회(GIGDC)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며, 한국게임개발자협회가 주관하는 행사다. GIGDC는 참신한 기획력과 실력을 갖춘 인디게임 개발자의 등용문이 되어왔다. GIGDC 역대 수상작 가운데는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와 ‘산나비’ 등 게이머들의 이목을 모은 게임도 있다. 이번 GIGDC 2021에서는 총 430여개의 지원작 가운데 25개의 작품이 선정됐다. 인터뷰를 통해 수상작과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게이머에게 전하고자 한다.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 2021 GIGDC 제작부문 일반부 금상을 수상한 블랙앵커 스튜디오의 ‘Before the Dawn(비포 더 던)’은 턴제 RPG와 생존 장르를 결합한 게임이다. 중세 유럽, 역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좀비가 돼 살아나는 세계에서 여러 캐릭터를 콘트롤해 성지까지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턴 마다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행동력(AP)을 잘 배분해 식량과 장비 등을 파밍하고, 좀비를 무찔러 달아나야 하는 시스템을 취해 전략적 재미를 살린 것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블랙앵커 스튜디오는 중소 개발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인디게임 개발에 뛰어든 정극민 팀장(39), 채승무(36), 김대섭(30) 씨가 의기투합 해 만든 인디 개발팀이다. 현재는 인턴까지 포함해 Brian Keegan(35), 배성희(34), 박수영(31), 최용호(27), 서금재(26), 구건우(25) 등 총 9명이 ‘비포 더 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스스로 재미있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인디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는 정 팀장은 “‘비포 더 던’을 꼭 기대치에 맞는 게임으로 만들어내고 싶다”고 각오했다.
아래는 정 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안녕하세요. 간단한 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작년부터 ‘비포 더 던’을 개발하고 있는 블랙앵커 스튜디오입니다. ‘카오스 온라인’과 ‘카오스 마스터즈’라는 게임을 같이 만든 3명의 개발자(정극민, 김대섭, 채승무)가 의기투합해 인디 개발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총 9명의 팀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트 2명, 프로그래밍 3명, 영상/사운드 1명, 기획 3명으로 이뤄져있고, 83년생부터 97년생까지 다양한 나이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업계에서 10년 이상 일한 시니어들과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주니어들이 함께 뭉쳐서 게임을 만들게 되었네요.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시다가, 인디게임 개발에 뛰어드신 계기가 있으신가요?
부분유료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는 게임들이 큰 틀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게임을 만들기가 어려운 것 같아서, 제작자로서 매너리즘을 느낀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콘텐츠는 결국 ‘재미’를 느껴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플레이어로서 점점 흥미를 잃고 있는 장르의 게임을 만든다면 언젠가 도태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인디 게임 제작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GIGDC 2021 제작부문 일반부 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수상 소감을 들려주세요.
저희가 워낙 개발을 여러 번 엎다 보니 완성도가 높은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금상 수상은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연락을 받은 팀원들의 표정을 표현하자면, 대부분 의문부호 투성이었죠.
현재 상태보다는 콘셉트의 매력도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에 많은 점수를 주셨다고 생각하고, 정진해서 꼭 기대치에 맞는 게임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비포 더 던’은 어떤 게임인가요?
중세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수사, 수녀, 사냥꾼 등 그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생존자들을 지휘해 살아남는 생존 전략 RPG 장르,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매 턴 마다 여러 명의 생존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면서 치열하게 한 수 한 수 고민을 해야만 클리어 할 수 있는 턴제 전술 장르의 게임이며, ‘엑스컴’ 시리즈처럼 난이도가 높지만 그만큼 이를 극복했을 때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비포 더 던’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한 게임인지도 궁금합니다.
본래 초기 창립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르가 전략 게임이기 때문에 이 장르 내에서 매력적인 콘셉트를 찾고 있었는데요,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소재는 이후 아트 팀원들이 합류하면서 “어떤 걸 그리고 싶으냐?”라고 물어봤을 때 이야기했던 테마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현대 배경의 좀비물은 워낙 흔하기 때문에 더 매력적으로 만들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보드게임 중 ‘좀비사이드’라는 작품에 중세 배경의 게임이 있어서, 이 게임처럼 시대를 중세로 옮겨 본다면 색다른 맛이 나오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초기 콘셉트를 잡게 됐죠.
턴 제 RPG를 생존 장르와 결합해서 어떤 효과를 내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생존 장르와의 결합이 목표였다기 보다는, ‘실제 중세 아포칼립스 세계에 던져진 것 같은 몰입감을 주고 싶다’는 목표로 테마에 어울리는 메커니즘들을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생존 요소들이 들어가게 됐어요. 턴 제 전술 장르 고유의 전투의 재미를 만들더라도, 실제 게임에서는 이 전투를 ‘계속 이어나가야 할 이유’가 필요해지는데요, “식량과 약초 같은, 생존에 필요한 물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는 요소가 전투에 자연스럽게 목적성을 제공하게 됐습니다.
‘비포 더 던’만이 가진 개성, 매력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턴제 전술’ 장르에 ‘중세’와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테마의 매력을 살려낼 수 있는 요소들을 녹여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예를 들면 ‘역귀’라 불리는 좀비들은 모두 ‘바라보는 방향’과 ‘시야’가 있는데요, 마치 잠입 게임처럼 ‘상대의 시야 밖’에서 걸리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식량만 조용히 확보한 뒤 빠져나올 수도 있고, 시야를 활용한 후방 공격으로 더 높은 피해를 주는 암살형 플레이, 혹은 정면에서 돌진하는 플레이 등을 플레이어의 취향과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 플레이어와 역귀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공격하는 ‘이단심문관’ 진영의 적대적 NPC들을 활용하는 요소라던가, ‘방어벽’이나 ‘함정’ 등의 크래프팅 요소를 활용한 전투 등 기존 턴제 전술 게임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지만 저희 테마와 어울리는 요소를 계속 연구,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생존 장르의 게임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스토리를 통해 몰입감을 주는 것도 중요해 보이는데요. ‘비포 더 던’에서도 스토리를 따라가는 재미를 찾을 수 있나요?
일단 ‘비포 더 던’은 ‘인물의 이야기’보다는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주력하는 방향입니다. ‘생존’이란 테마의 몰입감을 위해, ‘영구적 죽음’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죠. 게임 도중 캐릭터가 죽는다면 그 캐릭터는 정말로 ‘사망’한다는 의미입니다.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내 캐릭터’를 지정하고 해당 캐릭터가 사망 시 게임오버 되는 등의 장치는 도입되어 있습니다만, 해당 인물의 자세한 성격이나 배경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달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으로 인해 망가진 세계’의 단면들을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 즉, 광신적 성향을 지닌 중립적 NPC들과의 상호작용이라던가, 플레이어에게 고민을 주는 내러티브 적 선택지 등은 풍부하게 제공하려는 계획은 갖고 있습니다.
게임을 개발하시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어떤 점이 힘드셨는지, 또 팀을 곤란에 빠트렸던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특정한 게임의 규칙을 지정해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만드는 방식을 취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반 시스템’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이걸 만들고 테스트해 본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다시 만드는 방식을 취했는데, 3개월마다 한 번씩 시스템을 엎으면서 4번째 쯤 되니까 팀의 사기가 전반적으로 많이 떨어져서, 이 때가 가장 위기였다고 할 수 있었겠네요.
다행히 지금은 기반이 어느 정도 잡혔고, 콘텐츠 분량을 채워나가는 단계로 바뀌면서 위기는 넘기게 된 것 같습니다. BIC와 같은 전시회를 통해 유저 분들의 반응을 직접 볼 수 있었던 것도 큰 힘이 됐고요.
‘비포 더 던’은 이미 해외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압니다. 게이머들의 많은 평가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댓글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난 중세 테마도 좋아하고 좀비 아포칼립스 테마도 좋아하는데, 생각해보니 이 두 가지가 합쳐진 게임이 별로 없었네?! 이 게임, 완전 내 취향이야!” 이런 식의 댓글이 있었는데, 딱 저희가 초기 컨셉트를 고민할 때 했던 생각과 정확히 일치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라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돼 기뻤습니다.
게임은 언제 정식 출시가 될까요? 출시 전까지 어떤 부분을 다듬고 추가시키고 싶으신가요?
일단 2022년 중에 얼리억세스를 시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정식 출시는 그 이후 짧으면 반 년, 길면 1년 정도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저희가 올해까지는 계속 ‘틀과 기반’을 만드는 데 주력해왔기 때문에, 정식 출시를 위해서는 이제 유저 분들이 실제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분량을 확보해가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살아남은 캐릭터들을 계속 강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성장 시스템, NPC들과 교류하는 상호작용 시스템, 파티 내부에서 생기는 갈등을 조율하는 시스템 등, 만들고 싶은 건 너무 많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네요.
향후 게임이 출시되면 게이머들이 어떤 점에 집중해 즐겨주셨으면 하시나요?
게임의 근간은 ‘턴제 전술’ 장르이지만,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테마에 맞춰 ‘파밍’과 ‘생존’이라는 키워드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지면서 약간 복합 장르의 게임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집 안에 좀비 몰래 들어가서 먹을 것을 가져나오거나,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크래프팅을 해야 하는 등 생존 게임의 요소들이 많이 도입되었는데요, 이런 조합을 게이머분들이 어떻게 느끼실 지 궁금하네요.
어떤 개발자로 나아가고, 발전해가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자신만의 정체성이 명확한 개발자, 개발팀이 됐으면 합니다. ‘다키스트 던전’의 레드훅 스튜디오나 ‘디스 워 오브 마인’의 11 bit Studios를 떠올렸을 때 그들만의 정체성이 확 와 닿는 것처럼, ‘블랙앵커 스튜디오’의 게임이 ‘대체재가 없는’ 자신만의 확고한 색깔을 지닐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비포 더 던’이 그러한 아이덴티티를 담을 수 있는 게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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