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시행되는 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안은 경비원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 범위를 구체화했다. 개정된 시행령은 경비원이 경비 업무 외에 할 수 있는 일을 △낙엽 청소 △제설작업 △재활용품 분리배출 정리·감시 △위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차량 이동조치와 택배·우편물 보관 등의 업무로 한정했다.
△도색·제초 작업 △승강기·계단실·복도 등 청소 업무와 각종 동의서 징수 △고지서·안내문 개별 배부 등 관리사무소의 일반사무 보조 등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서울의 일부 단지를 중심으로 경비원이 대리주차를 해주거나 택배 물품을 개별 세대에 배달해주는 일 등도 앞으로는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입주자, 입주자대표회의 또는 관리주체 등에 대한 지자체장의 사실조사와 시정명령을 거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경비업자는 경비업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개정안에 경비원 업무범위 기준이 마련된 것은 경비원의 과도한 업무부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진 데 따른 것이다. 공동주택 경비원은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 업무만 수행해야 하지만 사실상 단지 내 모든 일을 도맡아왔다. 또한 일부 주민의 갑질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서울 강북구 아파트에서 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 사례가 공분을 사면서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발표하고 경비원의 업무를 구체화했다.
그러나 갑질금지법 시행만으로 경비원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비원은 근로기준법 제63조 제3호에 따라 감시·단속적 근로자(감단근로자)로 분류된다. ‘감시적 근로에 종사하는 자는 감시업무를 주 업무로 하며 상태적으로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자’를 뜻한다.
감단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24시간 맞교대(24시간 일한 뒤 하루 쉬는 구조)가 가능하고 주휴수당과 연장근로 가산금을 받지 못한다.
시민단체에서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감단근로자 적용 배제가 절실하다고 강조해왔다. 고령의 노동자가 대부분인 아파트 경비들이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 사망까지 이르게 될 위험에 내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일각에서는 공동주택법 시행령으로 인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분리수거 등 업무가 명문화되면서 오히려 업무가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19년 ‘서울시 경비노동자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업무 소요시간과 중요도 등을 고려한 비중치를 보면 방범 및 안전점검업무는 26.2%인데 비해 분리수거(23%), 청소(20.7%), 주차관리(13%) 등 관리업무 비중(73.8%)이 전체 업무의 3/4에 달한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경비노동자 감시단속직 해제촉구 고용노동부 규탄대회’를 열고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은 분리수거, 주차관리와 택배물품 보관 등 지금까지 경비노동자의 업무가 아니지만 불법적으로 시켜왔던 경비 외 업무를 경비노동자의 업무 범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처우개선의 핵심인 감시·단속직 해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휴게실 환경개선, 휴게시간 보장과 같은 변죽만 울리는 것들을 대책이라고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현수 서울노동권익센터 전문위원은 “대리주차 업무를 경비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업무로 분류했더니 일부 아파트 입주민 사이에서는 대리주차를 할 수 없다면 경비원이 필요하지 않다, 자르겠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초단기 계약 근절과 감시단속직 불승인이라는 근본적 해결책 없이는 경비원이 갑질에 취약할 수밖에 구조가 바뀌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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