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 51주기를 맞아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이주노동조합,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지구인의정류장 등은 7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 전태일 동상 옆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주노동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9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 단체는 “산업의 가장 밑바닥을 떠받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사회적 대우와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착취와 억압의 지옥”이라며 “이주노동자는 같은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요구안으로는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숙식비 공제지침 폐지 △임금차별 반대 및 체불방지 대책 마련 △산재예방 대책 및 건강보험 차별 폐지 △퇴직금 국내 지급 △이주여성노동자 성폭력 반대 등이 제시됐다.
이주노동자는 지정된 사업장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없다. 현행 외국인고용법에 따르면 고용주가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와 사업장이 폐업한 경우 등 법에 정해진 사유가 있을 때만 변경할 수 있다. 허가받지 않고 사업장을 떠나면 재취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상 강제 퇴거 대상이 된다. 이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고 싶어도 강제노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위원장은 “이주노동자에게는 사업장 변경·선택할 권리, 기간 연장할 권리 등 아무런 권리를 주지 않는다. 기계처럼 일할 의무만 있다”며 “일을 하다가 몸에 이상이 생겨도 사업주는 치료도 제대로 안 해준다. ‘다른 곳에 가고 싶어서 거짓말한다’고 말한다”고 토로했다.
숙식비 공제지침 또한 이주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7년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발표했다. 근로계약서에 숙식 정보를 기재, 적정 수준의 숙식비 징수를 지도한다는 취지다. 제공되는 숙소가 아파트·단독주택·연립·다세대주택일 경우, 월 통상임금의 15~20%까지 숙소비로 받을 수 있다.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인 경우, 상한액은 월 통상임금의 8~13%다.
숙식비 징수 관련 세부 지침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일부 사업주는 냉난방이 열악한 비닐하우스 등을 숙소로 제공, 한 방에 3~4명이 거주하게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인당 40만원씩 월급에서 공제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는 “비가 오면 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기숙사에서 지낸다. 밤에는 뱀도 나온다. 보일러도 없다”며 “월급에서 20만원씩 깎는다”고 이야기했다.
차별도 여전하다. 경력이 있어도 인정이 안된다. 지난해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결혼, 국내에 정착한 결혼이주여성들이 주로 종사하는 직군에서 임금차별이 심각했다. 결혼이민자와 자녀의 국내 정착을 돕는 통·번역 지원사와 이중언어코치 직군이다. 이들은 근속연수와 상관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10년째 이중언어코치로 근무 중인 한 이주여성은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도 다니고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석사과정까지 마쳤다”며 “경력에 따른 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다. 각종 수당도 지자체마다 다르다. 어느 지역에서 근무하느냐에 따라 명절수당·가족수당을 아예 받지 못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종로와 세종대로를 거쳐 청와대 인근 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전태일 열사의 51주기는 오는 13일이다. 주 6일 근무를 하는 이주노동자의 특성상 기자회견은 51주기를 한 주 앞둔 일요일에 진행됐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