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날씨에 나무껍질이 푸석해지고 벗겨지는 것처럼 온몸이 그렇게 됩니다. 혀, 귀, 성기부위 할 것 없이 염증수치가 극도로 높은 상태인거죠. 특히 손에 (각질이) 심하다보니까 다른 사람들도 찌개 같은 걸 같이 안 먹으려고 하고요. 건선을 앓은 지 44년 됐는데 일반적인 중증건선 상태보다 더 심해졌던 적이 두 번 정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무 것도 못하고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김성기 한국건선협회장은 중증건선 환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이같이 말하면서 정부의 산정특례 기준 완화 결정에 환영 의사를 표했다. 다만, 임상적으로 중증의 기준을 넘어설 경우 즉시 산정특례를 적용시켜 치료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부터 산정특례 기준 완화…‘광선치료’ 조건 사라져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25일 2021년 제24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개최하고 내년 1월1일자로 ‘중증 건선 산정특례 기준 개정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기준 변경은 의료적 타당성, 치료접근성을 고려한 결정으로 기존의 광선치료 의무기준이 삭제되고, 산정특례 등록을 위한 선택사항 중 하나로 변경됐다.
산정특례는 치료로 인한 경제적 부담으로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운 희귀질환, 중증난치성질환 환자들의 본인부담률을 10%로 감소시켜주는 제도다. 건선을 유발하는 매개 물질을 차단해 증상을 완화시키는 ‘생물학적제제’의 경우 가격이 연간 950만원~1500만원대에 달하고 보험급여가 적용돼도 최대 900만원 이상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들에게는 산정특례 적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6개월 이상 중증건선이 지속된 환자가 전신약물치료(3개월)와 광선치료(3개월) 두 가지 치료를 모두 받은 후에도 체표면적 10% 이상, PASI 점수 10점 이상의 임상소견을 보이는 경우에만 산정특례 신규등록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번 결정으로 치료 기준이 변경되면서 내년부터는 메토트렉세이트, 사이클로스포린, 아시트레틴, 광선치료 중 2가지 이상의 치료를 선택해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최소 주 2~3회 3개월 간 받아야했던 ‘광선치료’ 조건은 중증 건선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을 크게 떨어트리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동네 병원에서 광선 치료를 받지 못해 먼 곳의 큰 병원에 가야하는 경우가 많고, 잦은 치료로 환자들의 생업이나 학업에 지장을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개정안에는 2가지 이상의 치료방법 모두 부작용으로 치료를 중단한 경우에는 6개월 미충족 시에도 등록이 가능해지는 점, 경과규정을 두어 등록기준 개정일 이전부터 생물학적제제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 의료진의 임상소견으로 계속 생물학적제제 치료(보험인정기준 내)를 받아야 하는 경우 내년 6월 30일까지 신청해 산정특례를 적용하는 점 등이 포함됐다. 또 재등록 역시 치료 중단 없이 전문의 임상 소견으로 가능하게 됐다.
김 회장은 “한국건선협회는 중증 건선 환자들의 치료를 좌절시키는 비정상적인 산정특례 기준 정상화를 위해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정부와 1년 넘게 협상을 진행했다”면서 “이번 중증 건선 산정특례 등록 기준 개정으로 그동안 생업으로 광선치료를 받지 못해 본인에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던 환자들이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향후 과제는 ‘초중증 건선’ 치료기회 확대
다만 김 회장은 중증 기준을 넘어서는 ‘초중증’ 환자들의 치료기회 확대를 위한 추가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초중증’ 환자란 임상적으로 봤을 때 중증 기준보다 심각해 6개월이라는 치료기간을 두지 않고 즉시 생물학적제제 등의 필요한 조치를 진행해야 한다는 전문의 소견이 있는 상태다.
그는 “중증 기준보다 심한 경우 바로 산정특례를 적용시켜 필요한 치료를 즉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이번에는 산정특례 적용 기준을 완화하는 원안에 집중했지만 정부도 해당 사안에 대해 충분히 공감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중증인 환자는 피부, 장기, 관절 등 온몸에 염증 증상이 나타난다. 관절을 움직일 때마다 피부가 찢어지고 손바닥, 발바닥에는 농포건선이 올라온다. 염증이 있는 물집이 잡히는 것”이라며 “그런 상태에서는 걷지도 못한다. 고열, 염증, 각질, 빨간 반점들이 생기고 먹는 약, 바르는 약도 안 들어서 시간이 지날 때까지 집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당시에 적절한 치료가 되지 않으면 중증인 상태로 만성화가 되고, 류마티스관절염, 크론병, 궤양성대장염 등 연관 질환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된다”라며 “의료진이 판단했을 때 바로 생물학적제제를 투여해야 하는 환자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간혹 발생하기 때문에 여지를 남기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정보영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피부과 교수도 “산정특례 적용 기준이 완화되면서 혜택을 받는 환자들이 늘어날 것 같다. 충분히 시행해보고 불편하거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거나,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지원을 확대해나가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초기 치료 놓치는 경우 많아…인식개선 캠페인 진행
김 회장은 건선환자들이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인식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아토피는 잘 알지만 건선인지는 잘 모른다. 나도 44년을 앓았는데 이 질환이 왜 힘든지, 어떤 질환인지를 계속 알리고 있다”라며 “초기 환자들은 만성질환을 관리하듯 꾸준히 관리해줘야 중증으로 안 넘어간다. 대수롭게 여기고 관리 안 하고 움츠러들어서 병원도 안 간단다면 병이 병을 키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20‧30대에 건선 발병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데, 이들이 증상 경과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MZ세대에 맞춘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건선은 면역체계 이상이 원인으로 알려진 면역 매개 염증성질환이다. 단순 피부질환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방치할 경우 염증이 전신 곳곳에 퍼지면서 피부 증상뿐 아니라 다양한 이상을 일으킨다. 건선을 단순한 피부질환으로 여겨 이를 방치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을 시도하다가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선은 겉으로 보이는 피부 병변으로 인한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도 상당한 질환이다. 홍반과 인설이 동시에 나타나는 병변이 겉으로 드러나고, 활동할 때마다 하얀 각질들이 떨어져서 일반 사람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받기 십상이다. 특히 건선 병변이 몸 전체 10% 이상을 덮는 중증 건선 환자들의 경우, 누구보다 위생 관리에 철저함에도 불구하고 씻지 않고 다니는 비위생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거나 전염될 것 같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5년동안 국내 건선 환자수는 16만명 이상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증 건선 유병률은 전체 건선 환자의 10~20% 수준으로 알려져, 국내에는 약 3만명의 환자가 중증 건선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수인 기자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