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를 받던 여성 또는 그 가족이 살해당하는 일이 잇달아 발생했다. 신변보호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동부지법 하세용 판사는 12일 성폭력으로 자신을 신고한 피해 여성의 집을 찾아가 여성의 가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이모(26)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씨는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A씨의 집을 찾아가 A씨의 어머니와 남동생을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다. A씨의 어머니는 숨졌고, 남동생은 중태다. 이씨는 A씨와 교제했던 관계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 7일부터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었다. A씨 가족은 지난 6일 A씨와 연락이 닿지 않자 “딸이 감금된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사 끝에 대구에 있던 A씨와 이씨를 찾았다. A씨는 처음 피해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이씨와 분리조치 된 후 ‘감금돼 성폭력을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후 A씨는 신변보호 대상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진술이 상반되고 임의동행에 임했던 점 등을 이유로 이씨는 체포되지 않았다.
지난달 19일에는 김병찬(35)이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헤어진 전 애인을 스토킹하다가 살해했다. 전 애인도 신변보호 대상이었다. 법원은 김병찬에게 피해자 관련 100m 이내 접근금지,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내렸으나 참극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경찰은 신변보호 대상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한다. 스마트워치를 통해 대상자는 즉각 경찰과 연락할 수 있다. GPS 정보도 실시간으로 경찰에 제공된다. 이외에도 경찰 신고 시 신변보호 대상자임을 112 상황실에서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112 시스템 등록, 주거지 정기 순찰 등의 조치가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보다 적극적인 신변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가장 핵심 해법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떨어트려 놓는 것”이라며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범죄 등에서는 가해자에 대한 의무적 체포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무혐의가 소명되는 경우에만 체포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공격적이지만 실효성 있는 방법”이라며 “미국에서는 성폭력·가정폭력 범죄 등에서 의무적 체포와 의무적 기소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산 증가와 민간 인력 활용도 해법으로 언급됐다. 곽대경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확실한 신변보호를 위해서는 보호 대상자에게 경찰 3~5명의 인력이 붙어야 한다. 현재 경찰인력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며 “위험 정도를 고려, 경찰이 밀착경호 해야 하는 경우를 선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인력과 예산이 모두 부족한 현재로서는 민간 경호 업체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도 한 가지 해법”이라며 “이같은 예산이 필요한지 우리 사회의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