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대한불교 조계종에 따르면 총무원장인 원행스님은 13일 방정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김영문 사회통합비서관 등을 만나 캐럴 캠페인에 대해 “다 정리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캐럴 캠페인을 둘러싼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동석한 다른 스님도 “이번 캠페인이 백지화되지 않을 경우, 장관 사퇴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문체부와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총연합 등은 지난 1일부터 오는 25일까지 캐럴 활성화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12월엔, 캐럴이 위로가 되었으면 해’ 캠페인이다. 염수정 추기경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따뜻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문체부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유마당을 통해 캐럴 음원 22곡을 무료 배포한다고 홍보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징글벨’ ‘고요한 밤’, ‘오 베들레헴 작은마을’ 등 대중적인 캐럴과 가톨릭 성가 등이 포함됐다. 지상파 라디오 방송에서도 캐럴을 활성화할 계획이었다. 정부 예산 12억원이 편성됐다.
조계종은 지난달 30일 “정부가 특정 종교의 선교에 앞장서는 노골적 종교 편향 행위”라며 캠페인 중단을 촉구했다. 법정 다툼도 불거졌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종단협)은 지난 1일 정부를 상대로 캠페인 중지 관련 예산 집행 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캐럴 캠페인의 구체적 예산에 대한 정보공개도 청구했다.
논란이 커지자 문체부는 “불교계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다른 정부기관과 민간단체의 참여를 요청하고자 했던 계획을 시행하지 않겠다. 다만 종교계 주체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취소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등에 이미 지원된 예산은 회수가 어렵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불교계의 반발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2021년도 문체부 종무실 예산 현황을 살펴보면 불교 문화행사에 48억4100만원의 세금이 지원됐다. 기독교 59억600만원, 유교 12억원, 원불교 4억원, 민족종교 3억원 등이다. 지난해에는 불교 40억4500만원, 기독교 13억1300만원을 지원받았다. 타 종교에 비해 적지 않은 예산이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기 위한 연등회 행사 홍보·전시, 사찰에서 진행되는 산사음악회 지원 등에 사용된다. 문화행사뿐만 아니라 전국 972개 전통사찰 보존비용이 매년 지원된다. 2021년 기준 20억원이다. 종교 시설이자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총장 심만섭 목사는 “캐럴 캠페인은 코로나19로 시름하는 국민들을 위로하자는 취지다. 복음 전파 목적이 아니다”라며 “특정 종교 편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이어 “조계종에서는 성탄절이 되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줬다. 코로나19로 불안한 상황에서 종교가 국민의 마음을 다독이고 좀 더 희망을 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조계종은 캐럴 캠페인 논란은 예산 지원과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조계종 관계자는 “종교별로 예산을 나눠주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예산을 통해 종교 자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상관없다”며 “(중립을 지켜야 하는) 정부 기관에서 캐럴 캠페인을 주도적으로 홍보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체부나 정부에서 불교계에 공식적으로 사과, 합의한 것이 없다”며 “가처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캐럴 캠페인 논란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어떨까. 길희성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명예교수는 “본질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여러 편견과 기독교에서 불교에 대해 보였던 배타성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면서 “두 종교 사이에 늘 충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서로 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성청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는 “캐럴 캠페인의 사례만 본다면 국가의 세금이 들어간 사업이기에 다른 종교에서 반발할 여지는 있다”면서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는 쇼핑몰에서 캐럴을 트는 것 자체도 조심스러워 한다. 다문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불교에서도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다. 예산 집행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는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종교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도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