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언론인, 국회의원 다수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야당은 불법 사찰이라며 들고 일어났다. 수사 관행이라 하더라도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30일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불법 사찰 의혹을 해명했다. 김 처장은 “(통신자료 조회는) 검찰, 경찰에 물어보면 수사의 기본이라고 한다. 이걸 하지 말라면 수사 하지 말란 얘기”라며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청구 받은 것이다. 전혀 법적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 “검찰과 경찰도 다수 통신조회를 하는데 우리만 가지고 사찰이라고 하느냐”고도 반문했다.
전날 공수처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의 통신자료도 조회한 사실이 확인됐다. 윤 후보의 경우 공수처 3회, 서울중앙지검 4회, 인천지검 1회, 서울지방경찰청 1회, 관악경찰서 1회다. 김씨는 공수처 1회, 서울중앙지검 5회, 인천지검 1회였다.
공수처가 통신조회한 대상은 국민의힘 의원 80명과 현직기자 148명, 민간인 등을 합치면 200여명에 이른다. 공수처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통해 광범위하게 통신 자료를 조회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수처는 수사와 관련해 통신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으면서 이동통신사뿐만 아니라 카카오에 대한 압수수색도 허가받았다.
수사기관이 확보한 수사 대상자 통화 내역에는 수사 대상자가 통화한 상대방 전화번호와 통화 시간 등이 나온다. 그러나 카카오는 전화번호 주인이 누군지까지는 제공하지 않는다. 때문에 전화번호가 누구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 이름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는 셈이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이 규정한 ‘통신자료 제공’은 법원 또는 검사나 수사관서·정보기관의 장 등이 수사나 재판,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용자의 성명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통신자료 제공은 법원의 허가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전기통신사업자가 통신자료제공 사실을 이용자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도 없다. 이용자가 통신사에 직접 신청해야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검찰, 경찰, 국정원 등에 제공된 통신자료 건수는 전화번호 수 기준 255만9439건이다. 전년 동기 대비 36만2943건(12.4%) 감소했다. 검찰은 59만7454건, 경찰은 187만7582건, 국정원 1만417건, 공수처 135건, 기타 기관(군 수사기관, 사법경찰권이 부여된 행정부처)는 6만9651건 순이었다.
지난 2014년에는 세월호 집회를 수사하던 경찰이 2000명이 넘는 카톡 가입자의 전화번호를 수집해 시민단체 등에서 국가와 카카오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은 허용된 범위를 넘어선 개인정보가 압수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같은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는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하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통신자료 조회 규정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정부는 통신자료 제공 요건을 강화하면 범죄 수사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수사기관 반대 의견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2016년 “정보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무단 수집 행위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으나 5년째 심리 중이다.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통신사가 의무 통보하도록 하는 등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1대 국회에서도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이 사후 본인 고지를 의무화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문제는 수사기관이 영장이 없어도 요청만 하면 개인정보를 가져갈 수 있다는 점”이라며 “이용자 개인정보는 언뜻 민감한 정보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통화 기록 등을 통해 인적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용자(정보 주체)에게는 수사기관의 조회 사실이 고지되지 않는다. 설령 이용자가 통신자료 조회 정보를 요청해도 수사기관이 어떤 사유로 들여다봤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이용자가 통신자료 조회 남용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통신사, 수사기관 그 어디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문제가 생긴다. 법원의 허가를 거치고, 정보 주체에게 고지가 되도록 하는 등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