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취업한 이모(28)씨. 통장에 꼬박꼬박 쌓이는 월급을 봐도 기쁘지 않다. 일찍이 사업에 눈을 돌린 지인은 자산 50억 이상, 소위 경제적 졸업을 했다. 일하면서 그 정도의 돈을 만져볼 기회가 있을까. 해외 주식, 비트코인에 이어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 시장에 눈을 돌렸다. 몇 달 전부터는 정보가 오가는 오픈카톡방에 들어가 귀동냥 중이다. 화이트리스트, 민팅, 오픈씨….알아야 할 것도 많다. 매일 적어도 1시간씩은 틈틈이 NFT를 공부 한다.
더 이상 근로소득만으로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없다. 20대 청년 10명 중 6명이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쿠키뉴스가 20대 261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4일까지 자체 인식조사한 결과 ‘평생 근로소득으로 버는 것보다 주식·코인·복권·부동산으로 버는 소득이 더 많을 것으로 보나’라는 질문에 62.8%가 동의했다. 매우 그렇다 29.5%, 다소 그렇다 33.3%였다. 보통이다 16.9%, 별로 아니다 16.5%, 매우 아니다 3.8%였다.
지난해 한국에는 ‘묻지마 투자’ 광풍이 불었다. 20대도 뛰어들었다. 개인 투자자 수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겼다. 지난 4일 금융감독원이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20대가 가진 국내 주식 계좌 수는 249만2000여개였다. 60대(249만1000개)를 넘어섰다.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에 따르면 회원 연령대는 20대가 31%로 가장 많았다.
고모(25)씨는 대학 졸업 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 중이다. 그의 집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에는 항상 실시간 코인 차트가 그려져 있다. 바쁜 와중에도 코인 관련 뉴스와 유튜브를 챙겨본다. 고씨는 “불로소득을 통해 근로소득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 이유는 실제로 코인 투자로 빠른 시간 내에 돈을 번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치 판단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청년은 경제적 이익과 도덕성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할까. 적지 않은 청년이 도덕적인 정치인보다 경제를 살릴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약간 비도덕적이라도 경제를 살릴 것 같은 정치인에 투표할 건가’는 질문에 긍정 답변한 청년은 35.3%를 차지했다. 그렇다 27.6%, 매우 그렇다 7.7%였다. 아니다 31.8%, 매우 아니다 16.1%, 보통이다 16.9%로 집계됐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행복이 재산과 근소한 차이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행복 34.9%, 재산 32.2%, 자아실현 21.8%, 명예 6.9%, 건강 4.2% 순이었다.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9.5%였다. ‘돈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보나’라는 질문에 아니다 23%, 매우 아니다 6.5% 이었다. 그렇다 36.8%, 보통 19.9%, 매우 그렇다 13.8%으로 집계됐다.
취업준비생 황모(25)씨는 “돈이면 다 된다. 한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연애고 결혼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면서 “부자가 되면 사람들이 알아서 친해지고 싶어 한다. 돈만 있다면 인간관계, 사회적 위치, 취직 여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황씨는 “주식으로 300만원을 600만원으로 불린 친구를 봤다. 나는 300만원이 없었기에 할 수 없었다”라며 “그 친구에 대한 부러움은 물론,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 주식을 했어야 했다고 계속 자책한다”고 털어놨다.
최병섭 인천대학교 상담심리 연구원은 “청년들이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는 불확실한 사회, 미래와 연관되어있다”면서 “열심히 하면 보상받기를 원한다.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직장 취업, 집 한 채 사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좋은 차, 명품을 갖는 게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자각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불확실함이 가상화폐 투기로도 이어진다”면서 “다만 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수록 남과 비교하면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우울감, 부정 정서로 이어지기 쉽다”고 우려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