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전 11시 서울 6631번 버스 안. 버스에 오른 한영수(78)씨는 카드 지갑을 교통카드 단말기에 댔다. 단말기에 아무 반응이 없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대봐도 마찬가지. 동전을 뒤적거리던 그는 “현금을 받지 않는 버스에요”라는 운전기사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운전기사는 핸드폰으로 요금을 계좌 이체할 수 있다고 안내했지만 한씨는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겠다”면서 버스에서 내렸다.
한씨는 전날까지도 카드 사용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영문을 모르겠다고 했다. 평소 그는 버스 대신 자가용을 이용한다. 이날은 폭설로 버스를 타려 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금 안 받는 버스에 대해 “시민 불편이 가중될 것 같다. 아예 현금을 없애지 그러냐”면서 거센 눈발 속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금을 받지 않는 시내 버스가 늘어나고 있다. 현금 승차 이용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시내 버스업체는 수익 대비 비용이 높아 현금 요금함 유지가 부담된다는 입장이다. 다만 취약계층 이동권을 고려해 전면 시행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1일 서울시는 현금 요금함을 없애고 교통카드 이용만 가능한 ‘현금 없는 버스’를 418대로 늘리기로 했다. 현금 없는 버스는 지난해 10월부터 8개 노선 171대 버스를 대상으로 시작한 시범 사업이다. 시범 사업 기간은 오는 6월까지다. 인천시도 지난 10일부터 2개 노선에 대해 현금 없는 버스를 시범 도입 중이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시내버스 현금 이용자는 지난 2010년 5.0%에서 지난 2020년 0.83%로 꾸준히 감소했다. 인천도 지난해 현금 탑승객 비율이 2.6%로 집계됐다. 현금 없는 버스 노선을 운영 중인 공항버스 관계자는 “전에는 74대 되는 버스의 현금 요금함을 수거해서 매일 아침 5~6명이 모여 일일이 정산했다”면서 “규모가 작으니까 직접 하지 버스가 많은 회사들은 아예 별도로 인력을 고용한다. 현금 요금함이 고장나면 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또 “현금 요금함이 많이 무거워서 겨울에는 기사들이 들고 다니다가 넘어지는 등 사고가 종종 났다”고 부연했다.
버스 기사들도 교통카드만 받는 방식이 확대돼야 한다고 봤다. 이날 만난 경력 15년차 이상의 버스 기사 A씨는 “시행 초반에는 연령대가 높은 승객이 카드가 없어서 버스에서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면서 “지금은 하루에 한두 분 있을까 말까”라고 했다. 이어 “일부 노선에서만 이 제도를 시행해서 오히려 승객이 더 헷갈리는 것 같다. 아예 전면 시행이 낫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버스 기사 B씨 역시 “여러 사람 손을 거친 현금을 만진다는 게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찝찝했다”고 덧붙였다.
교통카드 없는 승객을 위한 대비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버스 정류장에 모바일 카드를 즉시 발급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설치했다. 또 시내 버스업체는 시범 기간 승객에게 요금 납부 안내서를 주고 계좌 이체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다만 노년층, 외국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의 불편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QR코드를 이용한 카드 발급, 요금 계좌 이체는 모바일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생소할 수밖에 없다. 현금 없는 버스 만족도 설문 조사도 QR코드 인식을 통해서만 참여가 가능하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시민 접근성을 제한해 운영 비용을 절감하려 한다는 발상이 공공서비스 가치에 맞지 않다”면서 “선불카드를 주로 이용하는 청소년 계층 등 교통 약자의 대중교통 서비스 이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해외에서도 불편함을 몰라서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 요금 결제 방식을 다양하게 운영한다”면서 “QR코드 등으로 교통카드를 발급받게 하는 방식은 이용에 대한 부담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금 없는 버스가 시민의 대중교통 이용을 제한한다는 지적에도 담당 부처는 안일한 태도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버스정책팀 관계자는 “자꾸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취재에 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