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지난 1일 니가타현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추천서를 제출했다. 사도광산이 지난 17~19세기 전통방식으로 금을 생산했기에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사도광산이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된 현장이라는 점이다. 지난 2019년 발간된 일제강제동원 피해 진상조사 학술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국립공문서관에는 사도광산 관련 조선인 1140명의 미불임금을 공탁한 기록이 남아있다. 최소 1140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으며, 이들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의 조사를 통해 사도광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도 있다. 앞서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자 접수 내역과 명부 등을 교차 검증해 148명을 사도광산 피해자로 추정, 판정했다. 148명 중 9명은 현지에서 사망했다. 73명은 후유증을 신고했다. 진폐증이 대다수였다.
피해자의 구술 증언도 남아 있다. 1919년 충남 논산 출생인 임태호씨는 1940년 사도광산에 동원됐다. 지하에서 광석을 채굴했다. 보고서에는 “‘오늘 살아서 이 지하를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졸이고 살았다. 사망자에게 인간 대접은 없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임씨는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들은 적이 없다”며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 진정한 사죄를 받기를 원한다”는 말로 구술을 마쳤다. 그는 1997년 숨을 거뒀다.
정부와 국내외 시민사회단체는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추진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3일 하야시 요시마 일본 외무상과의 첫 통화에서 사도광산 등재 추진에 항의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기시다 정권의 역사부정 시도는 사도광산에서 고통받은 피해자들, 강제동원의 역사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자 하는 일본의 역사왜곡 시도는 국제적 망신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일본 시민단체인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도 지난달 25일 “정부는 조선인 강제 노동을 부정하지 말고 인지해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한 채로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한다면 광산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려고 등록을 추진해온 관계자와 강제동원의 역사를 마주하려 노력한 사람들, 강제동원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는 일이 된다”고 비판했다.
일본이 강제동원 현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또 다른 강제동원 장소인 일명 ‘군함도’ 하시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다. 일본은 유네스코 등재 심사 당시 강제동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각 시설의 (강제동원을 포함한)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시설을 꾸미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인이 더 좋은 것을 먹었다”고 하는 등 강제동원의 역사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시설을 소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일본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전문가는 정부의 중장기적 대응과 진상규명 기관의 복원을 강조했다. 2019년 사도광산 관련 보고서를 작성한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2015년 이후 군함도 등 메이지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사도광산이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며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설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2015년 문 닫은 강제동원 진상규명 기관을 복원해야 한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로 판정받지 못한 분들이 다시 피해 신고를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역사왜곡에 맞설 근거를 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전쟁 관련 국제적인 학술네트워크와 한일 공동연구 위원회 구성 등도 해법으로 언급됐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