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꺾기’ 피해자 A씨 “화성외국인보호소 아닌 화성 관타나모”
-신체 자유 제한·아동도 구금…부당함 호소하면 독방 가두고 가혹행위
-인권침해 인정한 법무부, 뒤로는 전신결박 장비 도입 추진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10일 ‘외국인보호소 고문 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반인권적 보호소 내 발생한 고문 등 인권 유린에 대해 책임자 처벌, 관계 당국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공대위는 지난해 9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벌어진 가혹행위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시민단체 모임이다.
오는 11일은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5주기이기도 하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 참사는 지난 2007년 2월11일 여수 출입국사무소 내 외국인 보호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보호외국인 55명 가운데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보호소 직원들이 불이 난 사실을 알면서도 도주 우려 때문에 철창문을 빨리 열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함부로 가두고 결국 목숨까지 잃게 만든 한국 정부 출입국외국인정책의 맨얼굴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했다.
사건 직후 법무부가 고문 피해자의 생명 보호를 위해 새우꺾기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한 것과 그가 난동을 부리는 듯한 CCTV 장면을 무단으로 공개한 점을 들어 “15년이 지난 지금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사건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새우꺾기를 당한 피해자도 발언에 나섰다. 모로코 국적 난민 A씨는 지난해 3월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못해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용됐다. 외부 병원 진료 등을 요구하다 직원과 마찰을 빚었다. 발목보호장비, 박스테이프, 케이블타이 등으로 몸이 묶여 독방에서 약 4시간 넘게 새우꺾기 자세를 당했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고 비판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구금 11개월만인 지난 8일, A씨에 대해 보호 일시해제 조치를 했다. A씨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나오게 됐다. 화성외국인보호소는 지난 2019년 4월에도 이집트 국적 외국인에게 새우꺾기 자세를 취하게 해 인권위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이날 A씨는 ‘보호외국인’이라고 적힌 머리보호대를 쓰고 수갑을 찼다. 몸에 포승줄을 묶은 채로 등장했다. A씨가 입은 옷에는 ‘Hwaseong Guantanamo, The Ministry of Injustice(화성 관타나모, 불법부)’라는 큰 글씨가 박혔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 정부가 쿠바 관타나모에 세운 테러 용의자 수용시설이다. 물고문, 구타, 잠 안 재우기 등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다. 화성외국인보호소를 관타나모 수용소에, 법무부를 불법부로 비꼰 것이다.
A씨는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재판도 없이 무려 342일 동안 비인간적인 환경의 화성 관타나모에 갇혀 지냈다. 매일 같이 노예 의식을 치렀다”면서 “관타나모와 화성 관타나모의 유일한 차이점은 유니폼의 색깔”이라고 토로했다. A씨는 정신·신체적 피해와 자의적 구금에 대한 배상 그리고 한국 정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발언이 끝난 뒤 포승줄, 머리보호대, 수갑을 벗어 던지며 “Freedom and justice(자유와 정의)”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외국인보호소에 있는 이들은 범죄자가 아니다. 외국인보호소는 체류기간을 초과했거나 체류자격을 상실한 외국인이 본국 송환 전까지 머무는 임시 시설이다. 이름은 ‘보호소’이지만 실상은 참혹하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들은 무기한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아동을 구금한다. 보호외국인은 수감복과 같은 옷을 입고 하루 30분만 바깥공기를 쐴 수 있다. 열악한 처우에 부당함을 호소하면 독방에 가두는 일이 자행된다.
보호외국인의 무기한 구금이 가능한 이유는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 제63조 1항은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의 장은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사람을 여권 미소지 또는 교통편 미확보 등의 사유로 즉시 대한민국 밖으로 송환할 수 없으면 송환할 수 있을 때까지 그를 보호시설에 보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문제 제기는 오래됐다. 3차례나 헌법 소송이 있었다. 공대위는 지난달 13일부터 해당 조항 개정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권침해를 인정하고도 고문도구 합법화 시도를 하는 법무부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화성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한 뒤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교도소에서 사용하는 전신 결박용 의자, 조끼형 포승, 발목보호장비 등 13가지 장비를 외국인보호소에 도입하고 둘 이상의 장비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규정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이날 알려졌다.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자신들도 잘못했다고 하더니 뒤에서는 새우꺾기보다 심각한 고문을 가능하게 할 장비를 갖추고 이를 규정으로 집어넣고 있다. 고문장비 사용에 의료진 검토나 외부 통제도 불가능하다”면서 “법무부는 고문도구를 늘리고 합법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고문이 자행되는 시설이라면 지금 당장 폐쇄돼야 마땅하다”고 못 박았다.
인권위는 과거 수차례 법무부에 외국인보호소 개선을 권고했다. 지난 2018년에는 보호외국인이 운동시간 등을 제외하고는 종일 한 공간에 갇혀 지내고 있다며 이 같은 과도한 통제위주 수용 관리는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유럽권역에서는 보호외국인이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되고 시설 내 일정 구역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 일본 시나가와 수용소도 일과 중 정해진 시간대 보호소 내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해 다른 동료 수용자와 어울릴 수 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