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조용한 투쟁은 성공할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22-02-22 06:20:02
지난 11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역에서 승하차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출근길은 좀 피해서 시위하면 좋겠어요”, “택배를 한 달만에 받았어요. 파업 기사 볼 때마다 진절머리가 나요”


노동자와 장애인의 집회·시위를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투쟁하라는 질타도 나온다. 조용한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21일 오전 7시40분 서울 지하철 3·4호선에서 출근길 승하차 시위를 진행했다. 지하철 3호선 충무로역에서부터 지하철 4호선 혜화역까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시위로 지하철 운행이 약 5~10분간 지연됐다. 이날 오후 5시 공항철도 서울역에서부터 디지털미디어시티역까지 휠체어 승하차를 반복하는 퇴근길 시위도 벌어졌다.  

전장연은 지난 설 연휴 이후 평일마다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 탈시설 등을 위한 예산을 정부에서 책임지고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장연은 “우리의 요구는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왜 장애를 이유로 지하철을 탈 수 없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전장연 시위로 시민들이 입게 되는 피해가 막대하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전장연 시위 조치 또는 처벌을 촉구하는 청원이 게재됐다. 청원인은 “이건 너무하다 싶어서 청원한다. 누군가는 중요한 회의에, 힘들게 통과한 면접에, 학교에 늦는다”며 “(장애인 단체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 정부 기관의 제재를 촉구한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른 청원인은 “무고한 시민의 시간과 금전에 피해를 끼치는 방식으로 시위가 행해지고 있다”며 “폐단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본보기가 필요하다. 처벌을 촉구한다”고 전했다.

16일 오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를 점거해 7일째 농성중인 CJ택배노조원들이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택배 노동자들의 시위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앞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가 불거지자 CJ대한통운과 한진, 롯데글로벌로지스, 우체국 등은 사회적합의기구를 통해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는 처우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해 12월28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일부 택배 배송에 차질이 빚어졌다. 노조는 지난 10일에는 본사 건물로 진입해 농성을 벌이고 있다. 노조의 투쟁 방식이 과격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온라인에서는 택배노조를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지난 11일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역에서 승하차 시위를 진행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반면 노동·시민단체에서는 조용한 투쟁 방식에 대해 반문했다. 집회·시위는 절박한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알리고자 하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지적이다. 대화로 해결되지 않아 참가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에 나섰다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경기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던 부부가 리프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장애인단체는 이후 곳곳에서 피켓을 들고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였다. 서명운동과 거리행사, 입법공청회뿐만 아니라 때로는 쇠사슬을 몸에 감고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투쟁 속에서 저상버스가 만들어졌고 지하철 승강기가 확충됐다. 

전장연 관계자는 “처음부터 갈등을 불러오는 투쟁 방식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그만큼 벼랑에 몰려있기에 강경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저희에게 ‘좋은 말로 해봤느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는데. ‘많이 해봤다’고 답한다”며 “21년이라는 투쟁의 역사가 있으니 불편을 감수하고 이해해주시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전장연은 대선후보들이 TV토론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에 대해 명확히 답하면 시위를 중단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집회는 이슈를 만들고 주장을 알리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조용하게 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어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이야기하는지 들어달라”면서 “상대방이 대화에 응하지 않아 투쟁에 나서는 것인데 투쟁 자체에 대해서만 비판한다”고 강조했다. 

이소연 기자 soyeo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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