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나를” 피해자 입 막는 무고죄, 처벌 강화 후폭풍은

“감히 나를” 피해자 입 막는 무고죄, 처벌 강화 후폭풍은

기사승인 2022-03-14 16:07:4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건 ‘무고죄 처벌 강화’ 공약을 두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무고죄 처벌 강화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함께 윤 당선인의 대표 청년 공약이다. 이 공약은 형법상 무고죄 처벌 조항 있지만 성범죄 특수성을 감안해 별도 조항을 둬 가중처벌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젊은 남성의 호응을 얻었다. 윤 당선인은 20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 8일에도 페이스북에 ‘성범죄 처벌 강화 무고죄 처벌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단문 메시지 사진을 다시 한 번 올려 공약을 재확인했다.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범죄다. 형법 156조에 따르면 무고죄를 저질렀을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무고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범죄 발생 및 검거 현황 자료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 건수는 지난 2016년 3617건, 2017년 3690건, 2018년 4212건, 2019년 4159건, 2020년 4685건이다.

무고죄로 검거된 이는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검거인원을 남성과 여성으로 놓고 보면 △2016년 3082명 1623명 △2017년 2990명 1726명 △2018년 3465명 1946명 △ 2019년 3575명 2027명 △2020년 3727명 2398명으로 집계됐다. 

무고죄의 기소율은 낮다. 수사기관에서 무고죄를 입증하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과연 형량만 높인다고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나오는 이유다. 무고죄로 입건해 경찰이 송치한 사건 건수는 늘고 있지만 기소율은 2016년 4.3%에 이어 2019년 2.9%로 매년 감소 추세다. 재판으로 간 무고죄는 100건 중 3건이 안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무고죄 처벌 강화가 피해자를 위축시키고 가해자 협박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시민단체 사단법인 직장갑질119는 이날 “돈 많은 사장들이 ‘감히 나를 신고해’라며 협박 소송, 보복 소송을 일삼고 있고 법 지식이 없는 노동자들은 겁에 질려 협박에 넘어가기 일쑤”라며 무고죄를 ‘악마의 칼’에 비유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역시 지난 7일 논평을 내 “무고죄 처벌 강화로 오히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더 크게 고통 받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가해자가 무고죄를 들먹이며 피해자를 입막음 하려 하는 사례는 실제 적지 않다. 직장인 A씨는 업무 능력과 외모를 두고 비하를 일삼고 퇴사를 종용하더니, 급기야 문구용 칼로 위협한 회사 대표를 노동청에 신고했다. 이 사실을 안 대표가 A씨를 무고죄로 맞고소하겠다고 협박하자 A씨는 직장갑질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직장인 B씨는 회식 자리에서 인사부장에게 성추행 당한 뒤 이 사실을 대표이사에게 신고했다. 돌아온 건 해고였다. B씨는 경찰에 가해자를 강제추행으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가해자는 무고죄로 B씨를 고소하고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B씨는 “다행히 검찰과 법원에서 둘 다 인정되지 않았지만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1월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사례다. 고소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는 피해자들도 부지기수다.

전문가들도 무고죄 처벌 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영식 서원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금도 무고죄에 성범죄도 포함이 되는데 굳이 성범죄에 대한 별도 조항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성범죄 피해자들이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는 것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수사과정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성폭력 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수사기관에 드러나지 않는 범죄)다. 피해를 신고했다가 무고죄로 고소당하거나, 수사기관이 무고죄로 인지할까봐 침묵하는 피해자들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 가해자들이 적반하장으로 무고죄로 고소하겠다, 혹은 손해배상 청구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무고죄를 악용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더 부추기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고 했다.

윤 당선인 측은 반발 여론을 의식한 듯 성범죄에 한정한 처벌 강화는 아니라는 설명을 내놨다. 국민의힘 전 공동선대위원장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성폭력 무고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무고죄가 굉장히 많다. 재심 사건을 지원하다 보면 얼토당토 않는 사람을 살인범으로 몰아 평생 교도소에서 보내게 하는 그런 일도 벌어지는 데가 한국”이라며 “강력범죄에 대한 무고죄를 엄벌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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