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인데도 맛있다. 훤히 읽히는 익숙한 맛에 빠르게 중독된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미있다. 지금 월화드라마 1위를 달리는 SBS ‘사내맞선’ 이야기다.
‘사내맞선’은 완벽한 CEO와 정체를 속인 직원이 맞선으로 얽히는 내용을 그린다. 지오푸드의 식품 연구원 신하리(김세정)는 재벌 친구 진영서(설인아) 부탁을 받고 대신 맞선 자리에 나간다. 별난 행동으로 대차게 차여보려는 그의 앞에 나타난 건 자신이 다니는 회사 대표인 강태무(안효섭)다. 강태무는 기행을 벌이는 신하리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후 신하리는 정체를 들키고 자신의 본명이 신금희라 둘러대지만, 강태무는 그가 자신의 부하 직원임을 알게 된다. 한편, 진영서는 우연히 본 강태무의 비서 차성훈(김민규)에게 첫눈에 반한다. 차성훈은 진영서가 강태무의 맞선 상대인 것을 알고 그에게 선을 긋지만 두 사람은 자꾸 얽힌다.
얼핏 봐선 신데렐라 이야기다. 하지만 변주를 잘 해냈다. 로맨틱 코미디 클리셰의 장점을 요즘 시대의 입맛으로 치환했다. 신하리는 밝고 씩씩하지만 뛰어난 업무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다. 강태무 역시 신하리의 빼어난 성과를 높이 산다. 신하리의 정체를 알고 잠시 배신감을 느끼지만, 이내 그에게 마음이 가는 걸 자각하고 곧장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두 사람 관계는 꼬이지 않는다. 서로에게 마음이 향하는 과정은 명랑하고 코믹하게 그려진다. 이들의 만남을 방해하는 악인은 없다. 예쁘고 멋있는 주인공들이 펼치는 빠르고 속 시원한 사이다 전개가 ‘사내맞선’의 무기다. 복잡한 시대에 드라마라도 스트레스 없이 보고 싶어 하는 심리와 맞아떨어졌다.
여기에 시의성 있는 이야기를 잘 배합했다. 진영서가 이웃 남자에게 받은 소품에서 불법 촬영 카메라를 발견하는 에피소드가 단적인 예다. 진영서는 차성훈의 도움으로 이웃 남자를 붙잡아 경찰에 넘긴다. 불법 촬영 카메라에는 진영서와 신하리의 모습이 찍혔다. 남자가 당연히 처벌될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에게 경찰은 “벌금형 정도일 것”이라 말한다.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모습이다. 진영서와 신하리는 분개하지만 이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를 알게 된 강태무는 가해자에게 실질적인 응징을 가한다. 가해자의 이전 범죄 여력을 확보하고, 가해자를 퇴사시키는 조건으로 그가 다니는 회사를 인수한다. “난 보다시피 돈도 많고, 집요하고, 머리도 좋거든.” “당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가해자에게 일침을 가하는 강태무의 모습은 뭇 여성들이 원하는 판타지가 그대로 녹아있다.
단순하며 직관적인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볼거리다. 강태무는 빼어난 외모, 출중한 능력을 가진 완벽한 남자다. 동시에 과거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여린 면도 있다. 신하리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직장에선 능력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대학 동기를 7년째 짝사랑하는 순정도 가졌다. 진영서는 소탈한 재벌 2세로, 우정을 중요시하는 쿨한 사람이다. 차성훈은 강태무의 비서이나 사실상 그와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다. 강태무의 할아버지 강다구(이덕화)는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고 손자의 연애와 결혼에 큰 관심을 가진 재벌 회장이다. 그는 귀엽게 묘사되다가도 야심을 품은 주변인의 속내를 간파하고 따끔히 지적하는 강단도 보여준다. 이들 모두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에 등장하는, 전형적이며 현실에 없을 법한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익숙한 캐릭터들로 이야기 전개와 로맨스를 명료하게 풀어내며 보는 맛을 더했다. 변화하는 시대상을 캐릭터에 잘 풀어낸 것도 공감대를 높이는 데 주효했다. 조연들 역시 뚜렷한 개성으로 극에 활력을 배가한다. 웹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배우들의 비주얼과 재기 발랄한 연출 또한 호평을 얻었다. 이런 점들이 어우러지며 ‘사내맞선’은 ‘아는 내용이어도 자꾸만 보게 만드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호평과 입소문을 타며 시청률도 연일 상승세다. 1회 4.9%로 시작한 ‘사내맞선’은 2회 6.5%를 기록하고 3회부터 8%대에 진입, 6회에선 10% 고지를 넘겼다. 신하리를 연기하는 배우 김세정은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아는 맛이 더 무섭지 않나. ‘사내맞선’은 클리셰 맛집이다. 유치해도 보고 싶은 장면들이 모두 모였다”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사내맞선’은 모두가 아는 맛을 더욱더 맛깔나게 선보이며 순항 중이다. 극의 중반까지 달려 온 ‘사내맞선’이 후반부에 그릴 이야기에도 기대가 더해진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