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이 없으니까 여기 있죠. 이 동네는 쉬엄쉬엄 걸어 다닐 곳도 많지 않아요” 지난 29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거주하는 이수선(76·여)씨는 집 앞 의자에 앉아 지인과 담소를 나눴다. 임시 사랑방이다. 이씨의 집 500m 반경 공원은 어린이 공원 1곳뿐이다. 주말마다 도보 40분~1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구 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이씨는 “동네에 공원이 있다면 운동기구도 타고 산책도 자주할 것”이라며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10년 넘게 거주 중인 유모(69·여)씨 역시 비슷한 불편을 겪고 있다. 다리가 아파 앉을 곳을 찾다 성당까지 오게 됐다 말한 유씨. 그는 “이 근방에 공원이라고 할 만한 데가 전혀 없다. 새벽에 운동을 하려 해도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전부”라면서 “햇볕 쬐고 산책할 곳이 없어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유행이 3년째에 접어들었다. 시민들에게 집 근처 공원과 녹지 공간의 중요성이 커졌다. 양극화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높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지역에 공원·녹지가 적은 경향이 드러났다. 녹지는 도시 지역에서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등 경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공간이다.
도심 속 공원 및 녹지는 공기정화, 소음저감 효과뿐 아니라 시민 건강, 휴양 및 정서 생활 향상에 도움이 된다.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공원을 찾는 시민이 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해 한국지역학회 ‘COVID-19 확산에 따른 도시공원 이용자 수의 변화’ 논문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주거지역 내 위치한 소규모 근린공원 4곳 중 3곳(개롱근린공원, 가락근린공원, 웃말공원) 이용자 수는 평균적으로 3~6% 증가했다.
쿠키뉴스는 전국 시군구 단위로 스트레스 인지율과 1인당 녹지 면적(㎡)의 상관성을 살펴봤다. 질병관리청에서 집계한 지난 2020년 스트레스 인지율 조사와 한국국토정보공사의 같은 해 도시계획현황 조사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스트레스 인지율은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끼는 사람의 비율이다. 정신건강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1인당 녹지 면적은 자치구 내 녹지 면적을 인구수로 나눈 수치다.
스트레스 인지율과 1인당 녹지 면적은 반비례했다. 높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은 지역에 1인당 녹지 면적이 적다는 뜻이다. 두 변인간 상관계수는 –0.4로 분석됐다. 상관계수는 상관관계가 높을수록 ±1에 가깝다. 상관계수 절대값이 0.4 이상이면 유의미한 상관성을 띈다고 본다.
전국에서 가장 스트레스 인지율이 낮은 곳은 전라남도 신안군(6.2%)이다. 신안군의 1인당 녹지 면적은 774.29㎡다. 그 뒤를 전라남도 진도군(12.3%, 1738.10㎡), 전라북도 장수군(14.1%, 708.93㎡), 전라남도 구례군(14.8%, 743.58㎡)이 이었다.
높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시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인천 미추홀구였다. 스트레스 인지율 36.1%였다. 미추홀구 1인당 녹지 면적은 10.93㎡다. 인천 부평구(35.2%, 21.22㎡), 서울 강북구(35.1%, 40.20㎡), 서울 중랑구(35.1%, 18.63㎡)가 뒤따랐다.
녹지 면적과 미세먼지 농도 간 상관성을 봤다. 녹지 면적이 넓다고 해서 미세먼지가 크게 줄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의 상관성은 있었다. 1인당 녹지 면적과 미세먼지의 상관계수는 –0.27이다.
서울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결과, 자치구별 공원 면적 차이가 두드러졌다. 많게는 24배가량 차이가 났다. 서울의 1인당 도시공원 평균 면적은 12㎡이다.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이 가장 높은 구는 종로구(39.5㎡)다. 서초구(33.25㎡), 노원구(27.34㎡)가 그 뒤를 이었다. 가장 낮은 구는 영등포구(1.63㎡), 동대문구(2.74㎡)로 조사됐다.
1인당 도보생활권 공원 면적은 어떨까. 도보생활권 공원은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 공원을 말한다. 종로구(19.02㎡), 마포구(11.36㎡), 중구(9.99㎡)순으로 높았다. 하위 3개 자치구는 금천구(2.27㎡), 동대문구(2.94㎡), 도봉구(3.42㎡)다. 서울 1인당 도보생활권 공원 면적은 평균 5.49㎡이다.
공원 면적은 주관적 건강수준 인지율(이하 건강 인지율)에 영향을 끼쳤다. 건강 인지율은 스스로 건강 상태가 ‘매우 좋음’ 또는 ‘좋음’으로 응답한 비율을 뜻한다. 보건복지부 ‘지역사회건강조사’를 참조했다. 1인당 공원 면적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신의 건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 1인당 도시공원 면적과 건강 인지율 상관계수는 0.48이다. 1인당 도보생활권 공원 면적은 상관계수가 0.51로 나타났다.
1인당 도시공원 면적과 도보생활권 공원 면적이 서울 평균보다 높은 자치구를 들여다봤다. 종로구의 건강 인지율은 69.7%였다. 서초구 69%, 노원구 65.3%다. 반면 금천구는 53.6%에 불과했다. 도봉구 55.2%, 동대문구 59.7%로 확인됐다.
주민들은 가까운 거리에 공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김옥녀(63·여)씨는 반려견과 매일 주택가를 걷는다. 주변에 공원이 마땅치 않아서다. 김씨는 “차가 많이 다녀 산책할 때마다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손자와 함께 외출한 금천구 주민 김외선(61·여)씨는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는 데가 정말 없다”면서 “가끔 안양천을 가는데 걸어서 20~30분은 걸린다.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토로했다.
서울연구원 안전환경연구실 김원주 연구위원은 “공원, 녹지 면적과 시민 건강 연관성을 수치로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분석이 의미가 있다”며 “도시공원은 대기질 개선, 아름다운 경관, 도시 열섬 현상 완화, 시민 스트레스 해소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탄소중립, 기후변화와 함께 도시공원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자치구별 격차를 줄여야 한다. 특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 공원 면적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 공원에 대한 자치구의 관심, 예산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정진용, 이소연 기자 jjy4791@kukinews.com 이유민 쿠키청년기자 dldbals01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