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여전히 영리병원 찬성 입장인가? 한 나라의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세력이 영리병원에 어떤 입장인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제주 녹지국제병원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영리병원 개설의 물꼬를 터 의료 민영화가 가속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민영화 첫 걸음이 될 제주 영리병원을 국가가 매수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은 6일 참여 인원 20만명을 넘어섰다.
영리병원은 투자자 이윤 추구가 목적인 병원이다. 의사나 비영리법인이 병원을 세우고 번 돈을 병원에 재투자하는 비영리병원과 다르다. 병원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과잉 진료, 의료비 폭등, 더 나아가 의료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부작용이다.
4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7일 세계 보건의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인수위에 △영리병원에 대한 입장 표명 △의료민영화 공약 철회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공공병원이 아닌 민간병원으로 충분하다’며 시장 의료를 더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 위원장은 ‘영리병원을 의료산업 육성 측면에서 찬성한다’고 밝힌 적이 있고 바이오 규제 완화를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를 두고 “의료를 돈벌이 사업으로 만들어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것이 의료 민영화 그 자체”라며 “의료 민영화를 철회하고 공공의료 강화를 국정과제로 발표하지 않으면 인수위 시절부터 커다란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공공의료가 이미 고사 직전이라며 민간의료 확대는 반시대적일뿐 아니라 국민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성규 무상의료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음압병실, 중환자실 등 인프라 부족으로 환자들이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해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어지는 참상이 벌어졌다”며 “우리 사회는 의료 공공성이 확충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이어 “지난 2020년 기준 한국 공공 병상수는 전체의 9.7%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72.6%에 한참 미달한다”며 “그러나 윤 당선자는 공공병원 운영을 대형병원에 위탁하겠다고 한다. 또 후보시절 개인 의료정보를 상업적으로 활용하고 민간 영리사업자들이 의료시장에 진출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고 꼬집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일하는 보건의료 노동자의 목소리도 나왔다. 박경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장은 “민간병원이 90%가 넘는 상황에서 어떻게 더 의료민영화를 하겠다는 건가. 코로나19로 소진된 공공병원 인력이 확충은커녕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며 “병원 노동자들은 의료인력을 확충하면 살릴 수 있는 환자가 몇 명인지, 매일 몸으로 체감한다. 민간병원 확대는 명백한 의료공급 민영화”라고 비판했다.
또 시민단체들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인수위 기획위원장 사퇴를 요구했다. 제주에서 추진된 국내 1호 영리병원 ‘녹지국제병원’ 설립 허가 결정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원 전 지사는 지난 2018년 12월 손해배상을 감수하더라도 영리 병원 개설은 안 된다며 반대한 제주도민 뜻을 무시하고 조건부 허가했다. 향후 의료비 폭등 등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면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 영리병원은 한국 의료 체계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다. 원 전 지사는 인수위뿐 아니라 정계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일 제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정숙 수석부장판사)는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조건으로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윤석열 정부의 영리병원 도입 등 의료민영화 정책 신호탄이 될 수 있다며 비판 성명을 잇달아 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