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 조정을 논의 중이다. 방역, 의료체계를 비상 상황에서 일상으로 바꾸는 조치의 일환이다. 코로나19가 2급 감염병이 되면 확진자의 의료비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감염병 등급조정에 대해서도 폭넓은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늦지 않게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도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등급 조정에 대해 고위험군 보호 등을 포함해 현재 종합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관련 내용이 전반적으로 정비가 되면 발표하겠다”고 설명했다.
방역당국은 지난달 18일에도 유행 정점이 지나면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2급으로 전환하는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오미크론 치명률이 0.1% 이하로 계절 독감 치명률(0.05~0.1%)과 비슷한 수준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당시 박향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델타변이처럼 코로나19 초기 대응 방식으로는 늘어나는 확진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며 “오미크론의 특성의 변화, 국민들의 접종률이 높은 상태다. 최근 감염예방관리지침을 개선한 바 있다. 이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감염병 2급 전환 문제도 논의가 시작됐다”고 부연했다.
법정 감염병이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는 감염병을 말한다. 5단계로 나누어져 있던 법정감염병 분류 체계는 60여년 만에 개편됐다. 지난 2020년 1월1일부터 4단계로 이뤄진 새로운 분류 체계가 도입됐다.
법정 감염병은 질환의 심각도, 전파력, 관리 방안 등에 따라 단계가 나뉜다. 1급 감염병은 가장 위험도가 높다. 생물 테러가 가능한 질환이나 치명률과 집단 발생 가능성이 큰 감염병을 일컫는다. 따라서 발생 또는 유행 즉시 신고하고 음압격리 등 높은 수준의 격리가 필요하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에볼라바이러스병, 탄저, 두창, 페스트, 보톨리눔독소증, 동물인플루엔자 인체감염증,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등 감염병 17종이 여기에 속한다.
2급 감염병은 발생 또는 유행 시 24시간 안에 신고하고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이다. 결핵, 수두, 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A형 간염, 폐렴구균 감염증, 한센병, 성홍열 등 20종이 해당한다.
신고의무자(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는 1급 감염병의 경우 즉시, 2급과 제3급 감염병은 24시간 이내, 4급 감염병은 7일 이내에 관할지역 보건소장 등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의무자가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시에는 벌금을 내야 한다. 제1급 감염병과 제2급 감염병은 500만원 이하 벌금, 제3급과 제4급 감염병은 3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낮춰 격리 의무가 해제되면 치료비 및 생활비나 약값을 환자가 부담하게 될 수 있다. 정부는 1급 감염병이나 결핵 등 일부 2급 감염병을 제외하고는 입원 또는 치료비를 전액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전자증폭(PCR) 검사 유료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는 국가가 코로나19 치료비를 전액 부담한다. PCR 검사의 경우, △60세 이상 고령자 △밀접 접촉자 △신속항원검사 결과 양성인 자 등 우선순위 대상자는 무료다. 그 외에는 의료기관에 따라 4000원~11만원의 검사비를 자부담한다. 자비로 PCR 검사 후 양성 판정시 검사비용을 환급받을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법정 감염병 등급 하향 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지난달 경기의사회에 이어 광주의사회는 지난 6일 성명을 냈다. 광주시의사회는 “코로나19를 2급 감염병으로 조정하면 코로나19로 인해 오히려 제한되었던 일반 질병에 대한 치료 및 진단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의견은 다르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정부가 재정 부담을 지지 않고 개인에게 책임을 지게 하겠다는 것”이라며 “하루 확진자 수는 세계 1위에 매일 사망자가 300명대씩 나오고 있다. 방역을 단계적으로 푸는 것에만 방점을 두고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2급 감염병 전환 뒤 실제로 어떻게 지침을 바꿀 지 모르겠지만 격리 기간 축소와 격리 의무 해제를 염두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확진자 수가 줄기는 했지만 의료기관은 여전히 원내 감염, 의료진 감염이 심각하다.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의료 붕괴 상황이다. 정부가 보건 의료 인력 확충 등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일상으로 복귀하겠다고 하는 방향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