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제주녹지국제병원(녹지병원)에 대한 허가 취소를 논의한다. 녹지병원 건물과 부지를 사들인 국내 법인은 비영리 병원으로 전환, 문을 열겠다는 입장이다.
도는 12일 오후 5시 제주도보건의료정책 심의위원회(심의위)를 열어 영리병원 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보건의료 전문가와 관련 단체 및 시민단체 대표 등이 심의위에 참여한다. 이후 녹지병원 측 소명을 듣는 청문 절차를 거쳐 최종적으로 취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도가 녹지병원에 대해 외국의료기관 허가를 다시 한번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9년에 이어 두번째다. 도는 지난달 28일 녹지병원에 대한 실사를 벌였다. 내부에 의료 장비가 전혀 없고 의료 인력도 마련하지 않아 의료기관으로서 정상 운영이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난 4일 밝혔다.
법적 요건도 충족하지 못한다.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과 ‘제주도 보건의료 특례 등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영리병원은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를 넘어야 설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녹지병원 지분 75%는 국내 법인인 주식회사 디아나서울에 있다. 나머지 25%는 중국 녹지그룹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녹지제주)에 있다.
오상원 의료영리화저지도민운동본부 정책기획국장은 “법적으로 귀책사유가 녹지 측에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개설 허가가 취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서 “녹지병원이 영리병원으로 운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해 녹지병원이 문을 열 가능성은 있다. 녹지병원 건물과 부지를 사들인 디아나서울 측은 내달 중 비영리의료법인 설립 허가 신청을 제출, 오는 9월 비영리병원을 개원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도가 이번에 허가 취소 결정을 내린다면 영리병원으로서의 녹지병원 개원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디아나서울이 비영리의료법인을 세워 영리 법인과 자금이 연동되지 않게 하는 등 자격 요건을 맞춘다면 비영리 병원은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전 정책국장은 “도가 병원 허가를 또 한번 취소하면 녹지 측에서 법리를 검토해 다시 소송으로 맞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녹지제주는 제주도로 상대로 제기한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부 허가 취소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개원을 허가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당장 영리병원 개원은 막았지만 이번 판결이 의료 민영화 물꼬를 터줬다는 우려가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민영화 첫 걸음이 될 제주 영리병원을 국가가 매수해 주십시오’라는 청원은 지난 6일 동의 인원 20만명을 넘겼다.
녹지제주는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헬스케어타운 내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면적 1만7679㎡ 규모의 녹지병원을 짓고 지난 2017년 8월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신청을 냈다. 도는 2018년 12월5일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도는 녹지제주가 조건부 개설 허가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병원 문을 열지 않자 지난 2019년 4월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다.
녹지제주 측은 내국인 진료 제한 등 조건부 허가의 적법성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도의 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도 냈다. 녹지제주 측은 병원 개설 허가 취소 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서는 지난 1월13일 최종 승소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