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민규는 요즘 얼떨떨하다. 드라마 하나로 SNS 팔로워가 200만명이나 늘었다.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애정 어린 응원이 따라붙는다. 정작 인기를 실감하진 못한다. 밖에 나가도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 SBS ‘사내맞선’에서 안경 미남으로 인기를 끈 그의 ‘웃픈’ 이야기다.
“실감은 안 돼도 머리로는 인기를 느껴요.” 최근 서울 이태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민규는 여유로움이 가득해 보였다. 안경을 쓰고 다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우스갯소리에 “그래도 못 알아보실 것 같다”며 웃었다. 그가 출연한 ‘사내맞선’은 4.9%로 시작해 11.4%로 막을 내리며 시청률만 2배 이상 올랐다(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글로벌 TV 프로그램 시청 순위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는 극 중 강태무(안효섭) 비서이자 진영서(설인아)와 사랑에 빠진 차성훈을 연기했다. 서브 커플이지만 메인 커플과 비슷하게 인기를 끌며 ‘사내맞선’ 흥행을 이끌었다.
“반응이 뜨거워서 감사했어요. SNS에 ‘안경 캐릭터에 한 획을 그은 남자’라는 글이 뜨더라고요. 쑥스럽기도 했지만 관심을 많이 받고 있구나 싶었어요. ‘안경남’이라고 불러주신 것도 감사해요. 연하남 이미지를 벗고 남성적이면서도 섹시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했어요.”
‘공과 사를 지키는 듯 애매하게 줄을 타는 느낌.’ 김민규가 대본을 보고 차성훈에게 받은 인상이다. 김민규는 차성훈을 표현하기 위해 세세한 부분부터 연구했다. 스타일링부터 웹툰을 충실히 재현했다. 그러면서도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집에서는 편안한 복장을 입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 웹툰 속 차성훈의 섹시한 느낌도 부각하려 했다. 풋풋한 연애를 보여주는 강태무-신하리(김세정)와 달리, 진영서와 어른의 연애를 보여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화제를 모았던 안경 벗는 키스신은 이런 고민 끝에 탄생했다.
“태무-하리 커플과는 확실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들이 20대 초반의 설렘을 보여준다면, 성훈-영서 커플은 20대 후반 연애를 대변해야겠다고 결심했죠. 마이너스 통장 얘기도 나오는 등 시청자가 공감할 부분도 많았어요. 안경 벗는 키스신은 리허설을 거쳐 완성됐어요. 감독님, (설)인아 씨와 여러 버전을 고려하다 제가 안경을 벗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죠. 반응이 좋아서 기뻤어요.”
전 세계에서 인기였다. 종영 이후에도 시청 순위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12부작이어서 아쉽다는 반응도 줄을 잇는다. 김민규는 “시청자 입장에서 봐도 재밌던 드라마”라며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유치한데 재밌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걸 ‘사내맞선’이 해내더라고요.” 싱글벙글 웃던 그는 이내 함께한 배우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추억에 잠겼다. 활기찬 현장 분위기는 그의 원동력이 됐다.
“시끌벅적한 현장이었어요. 배우들끼리 아이디어를 내며 장면을 만들어가곤 했거든요. 인아, (김)세정 씨가 만나면 촬영장의 텐션이 확 높아져서 더 즐거웠어요. 이덕화 선생님께는 많은 걸 배웠어요. 정말 젠틀하고 유쾌하시거든요. 연기하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신 덕분에 편하게 연기했어요. (안)효섭 씨와도 서로 호흡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촬영했죠. 애드리브를 쳐도 다 받아줘서 고마웠어요.”
김민규는 올해 서른을 앞둔 9년 차 배우다. 뚜렷한 흥행작은 없었지만 뚝심을 갖고 묵묵히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묻자 그는 “그냥 잘 보냈다”며 담담히 말했다. 작품을 하지 못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쉴 시간이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단다. 그는 20대 시절을 ‘나쁘지 않은 시간’이라 자평했다. 20대 끝자락에 만난 ‘사내맞선’은 그에게 자신감을 선물했다. “확신을 갖고 연기하면 시청자도 알아봐주더라고요.” 김민규는 이 경험을 자양분삼아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색다른 캐릭터에 도전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에요. 작품에 임할 때마다 캐릭터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곤 하죠. 이미지 변신이 늘 숙제처럼 남아있다고 할까요? 전작인 JTBC ‘설강화’에서도 기존과 다른 강인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어요. 앞으로도 도전에 망설임 없이, 부족한 점은 보완하며 배우 김민규의 30대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새해가 되면 ‘내년보단 올해 성장하자’는 목표를 세우곤 하는데, 다행히 올해는 ‘사내맞선’으로 성장을 잘 해낸 것 같아요. 이전과 다른 저를 더 많이 보여드릴 테니, 앞으로 저를 더 궁금해해주세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