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을 앞두고 의료계 내부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단체들로 이뤄진 ‘간호단독법 저지 10개 단체 공동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9일 오후 1시 국회 앞에서 ‘간호단독법 철회 촉구를 위한 궐기대회’를 개최했다. 비대위는 이날 299명으로 집회 인원을 신고했다. 주최측 추산 약 400여명이 참석했다.
10개 단체는 △의협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한국요양보호사중앙회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한국재가장기요양기관협회다.
이들 단체는 간호계가 앞장 선 간호법 제정이 코로나19에 대응하기도 바쁜 일선 의료 현장에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계의 숙원이다. 70년간 국민의료법에 포함됐던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떼어내, 독립적인 법체계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21대 국회에서 1년 넘게 논의된 끝에 이달 임시국회 상정을 앞두고 있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민석 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국민의힘 서정숙,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법이 올라와있다.
김 위원장이 발의한 간호법은 △5년마다 간호종합계획을 수립하고 △보건복지부(복지부)가 3년마다 실태조사를 하며 △간호사의 양성 및 처우 개선을 심의하기 위한 간호정책심의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간호사 처우와 복지 향상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지난 2년간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인들이 각자 자리에서 다함께 사투를 벌였다. 처우 개선도 모든 직역(어떤 직업이나 직무의 영역이나 범위)이 함께 이뤄지는 게 공정하고 상식적인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가 단독으로 진료·개원해 질 낮은 의료기관이 양성되는 등 부작용을 우려했다.
다른 직역 단체도 간호법 반대에 힘을 보탰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측에서는 간호법이 통과되면 간호조무사의 사회적 지위가 악화되고 요양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요양보호사협회 역시 “요양보호사 의견 한 번 들어보지 않고 간호법에 요양보호사를 일방적으로 포함시켰다”며 “간호사가 요양보호사를 교육하고 업무 지휘할 수 있게 한 것은 종사자들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간호사의 업무상 관리·감독 관계를 ‘의사의 지도 하에’로,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하고 있다. 간호계는 간호사 처우와 역할을 강화해 의사와 업무상 관리·감독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유행과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간호사 업무 중요성이 커진 것도 간호법 발의에 한몫을 했다.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모두 간호계의 손을 들어줬다.
간호계는 의협이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있다고 반박한다. 대한간호협회는 “복지부가 간호법으로 간호사가 단독 개원을 할 수 있느냐는 질의에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면서 “의협이 간호법은 악법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우는 데 혈안이 돼있다”고 규탄했다. 또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과 배치, 그리고 처우 개선 등에 관한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간호법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청원인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점점 임상현장을 떠나고 있다. 신규 간호사 절반이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꿈을 접고 있다”면서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다. 한 달 동안 20만명 넘게 동의했다.
복지부는 “한국 임상 활동 간호사 수는 선진국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며 간호사 이직률은 14.5%로 전체 산업 이직률 5.2%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라며 “정부는 간호인력을 지속 확충하고 간호인력의 처우와 근무환경을 개선하고자 관련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