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의과대학 편입학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다. 전국 의대 교수 자녀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나온다.
정 후보자의 딸은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 진료처장(부원장)이었던 2017학년도 경북대 의대에 학사 편입했고, 아들은 정 후보자가 원장이었던 2018학년도 경북대 의대 학사 편입 특별전형에 합격했다.
편입 심사위원장은 정호영 1년 선배…‘블라인드’ 시험도 아니었다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 후보자 아들 정모(31)씨가 응시했던 편입학 시험의 평가위원장은 정 후보자의 경북대 의대 1년 선배인 A교수다.
당시 A교수는 경북대 의과대학장과 의학전문대학원장을 동시에 맡고 있었다. A교수는 편입학 시험 평가위원장으로서 서류, 면접, 구술평가 등 전형 과정을 총괄했다. 평가 기간 동안 정 후보자가 A교수를 세 차례나 만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논문 공저자 사이인 다른 교수들도 평가위원으로 참여해 정 후보자 자녀에게 높은 점수를 줬다.
면접 전 심사원들은 이미 수험생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었다. 2017·2018학년도 경북대 의대 편입학 구술, 면접은 응시자 이름과 수험번호가 노출된 상태로 치러졌다. 평가위원이 수험생을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시험이 치러졌다는 정 후보자 해명과 정면 배치된다.
불똥은 다른 국립대로도 튀었다. 정성택 전남대 총장 딸 정모(30)씨가 지난 2017년 전남대 의과대학에 편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부친이 의대 부학장으로 재직할 당시였다. 전남대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시적으로 의대 편입학 제도를 시행했다. 정씨도 2016년 편입학 전형에 응시해 2017년 3월 의대 본과 1학년에 편입했다.
면접관들은 전남대 의대 교수들이었다. 정 총장 측은 “(편입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바 없다”고 했다. 정씨가 응시한 구체적인 의대 편입한 전형, 정씨의 서류·면접 점수 등에 대해서는 개인신상 정보라는 이유로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해충돌 모르나”…의료계도 등 돌려
의료계에서도 의대, 병원 근무 자녀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이형기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지난 19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일개 평교수라도 동료 아이가 면접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제아무리 돌부처 면접관이라도 신경을 쓰는 게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어떤 면접관이 병원장 자녀를 정말 엄격하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겠나”라며 “공정 유지의 기본인 ‘이해충돌의 회피’ 원칙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공직을 맡겠다고 나서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의대 교수 자녀들의 의대 편입학 사례를 전수조사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의가 구현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원하는 대한민국 의사들 일동(의사들 일동)’은 정 후보자 사퇴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성명서에는 “그의 자녀가 편입할 때 특별전형 제도가 존재했다는 사실, 정 후보 및 그의 딸과 인연이 깊은 심사위원 3명만 구술평가시험에서 만점을 줬다는 사실, 정 후보자 아들이 5년 만에 현역에서 4급을 받았고 이 사이 의료비 사용이 전무하다는 사실 등 ‘아빠 찬스’를 사용한 뚜렷한 정황”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6년간 국립 의대 편입학 보니…두 자녀 편입시킨 부모, 정 후보자 유일
국민의힘에서도 바뀐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21일 정 후보자에 대해 “이해 상충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같다”며 자진 사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 19일에는 국민의힘 김용태 청년 최고위원 역시 정 후보자에게 자진 사퇴를 공개 요구했다.민주당은 의대 편입 과정에서 불공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현황 조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신현영 민주당 의원이 10개 국립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간(2015년~2020년) 의대 학사 편입생 중 부모가 같은 의대 교수인 경우는 정 후보자 자녀 2명을 포함해 총 8명이다. 학교별로 서울대 1명, 부산대 3명, 충북대 1명, 경북대 2명, 경상대 1명이었다.
신 의원은 “지난 6년간 10개의 국립 의대 학사 편입생 부모 현황을 확인한 결과, 학생의 부모가 같은 의대 교수인 사례는 총 8명, 그 중 두 자녀가 (부모가 있는 의대에) 편입한 경우는 정 후보자 딸과 아들이 유일하다”면서 “부모 찬스를 활용하는데에도 독보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조사 대상과 기간, 범위를 사립대까지 확장시키고 학사 편입 외 기존 일반 편입까지 확대하는 등 정부와 협력해 현황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대학병원 의대 교수는 “물론 병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방 대학 병원의 경우에는 수도권보다 아직 문화가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병원장 자녀를 면접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면접관들이 신경을 더 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윤리,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며 코로나 시대 가장 중요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전문성과 역량 유무는 뒷전이 됐다”고 지적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