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거리로 나온 시민이 북적이는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인근에 있는 한 카페에는 20~30대 남녀 손님들만이 빼곡하다.
유모차도, 어린이들의 울음소리도 없는 이곳은 노키즈존(No Kids Zone)이다. 카페 정문에는 ‘전 층이 노키즈존입니다. 어린이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입장을 제한합니다’라고 적은 공지가 붙어 있다.
해당 카페처럼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있다. 구글 지도에 노키즈존 업체를 표시한 노키즈존 지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있는 노키즈존은 420곳 이상이다.
주로 조용한 분위기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카페, 음식점 등이 노키즈존을 운영한다. 성인이 쉬는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출입이 제한된 연령은 영유아부터 13세 이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부모와 같이 오더라도 입장할 수 없다.
업주들은 노키즈존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어린이가 큰 소리로 떼를 쓰는데도 제지하지 않거나, 식기를 깨뜨리는 상황 등이 반복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고객에게 피해를 주고 영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처라고 항변한다.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노키즈존 허용 찬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1%가 ‘업장 주인의 자유에 해당하고,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기 때문에 노키즈존을 허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어린이와 어린이 동반 손님을 차별하는 행위이고, 출산 및 양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므로 허용할 수 없다’는 응답은 17%에 그쳤다.
실제로 만난 다수의 시민도 노키즈존 도입에 찬성했다. 서울에 사는 추세연(30)씨는 “노키즈존을 방침으로 내세운 사장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이라며 “어린이가 있으면 깨끗하고 조용한 환경을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어린이를 방관하는 부모의 잘못이 크다는 비판도 있었다. 홍익대학교 인근에서 만난 20대 김모씨는 “노키즈존을 찬성한다”면서 “부모가 어린이를 방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노키즈존이 생겼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어린이·청소년 인권 실태와 주요하게 짚어야 할 쟁점들을 언급했다. 그중에는 노키즈존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동권리위원회는 노키즈존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차별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공장소의 지나친 상업화로 인해 어린이 놀이·여가 공간이 제한을 받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관용이 사라진 사회 분위기가 성장기 어린이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인권위는 2017년 노키즈존 방침이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2016년 11월 제주에서 노키즈존 식당을 운영한 A씨의 사건과 관련, 노키즈존 영업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 조항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이나 종교·나이·외모 등을 이유로 차별대우를 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로 규정한다.
인권위는 “영업의 자유가 무제한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어린이를 동반한 모든 보호자가 사업주나 다른 이용자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며, 무례한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다른 이용자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합리적 이유 없이 나이에 따라 어린이를 차별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어린이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사업주들이 누리는 영업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도 강조했다.
공간 제한은 유구한 차별 방식이다. 1960년대 미국사회의 흑인 차별은 흑인과 백인을 구별하는 것일 뿐 평등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근거는 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 판결이다. 백인 전용 1등선 객차에 탄 호머 플레시가 유색인종 열차 칸으로 옮기라는 차장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이다. 당시 퍼거슨 판사가 있던 루이지애나 법원은 ‘분리하되 평등한’ 시설이라면 인종을 분리해도 평등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흑인들은 더럽고 문제를 일으키며, 백인과 섞일 수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No blacks and dogs(흑인과 개는 사절)’, ‘For whites only(백인만 출입할 수 있음)’ 같은 문구가 식당이나 화장실 등 공공장소 곳곳에 붙었다.
이 판결은 흑백 분리 정책을 법적으로 정당화했다. 차별은 분리를 만들었고, 분리는 다시 차별을 공고히 했다. 노키즈존도 다르지 않다. 노키즈존에는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어른의 시각이 담겼다. 우리 사회는 의젓한 아이나 부모의 완벽한 통제만 바랄 뿐, 이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에 인색하다. 사회가 노키즈존을 용인할수록, 아이는 민폐를 끼치는 성가신 존재로 자리 잡는다. 혐오와 차별은 늘 취약한 대상을 노린다.
차별 겪은 어린이가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논의는 이 지점부터 다시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노키즈존을 보고 자란 어린이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노키즈존 찬반 의견과 관계없이 대답은 비슷했다. 시민들은 아이들 일상 전반에 차별이 스며들 것이라고 봤다. 나이뿐 아니라 성별, 정체성 등 수많은 기준을 적용해 타인을 거부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 의견도 같았다. 노혜련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리다는 이유로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이 타인에 대한 거부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노키즈존이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시작하면 누구나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며 “노키즈존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뭔가를 결정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과연 관용을 베풀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노존(No Zone)의 대물림도 예고했다. 임영주 부모교육연구소 소장은 “노키즈존에서 거부를 겪은 아이들은 또 다른 ‘노존’을 만들어 다른 계층을 밀어낼 가능성이 크다”라며 “서로 불편을 감수하는 사회가 아니라, 간단하게 불편을 제거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소장은 어린이가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익힐 때까지 배려하는 관용 정신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 한 번도 완벽한 어린이인 적이 없었고, 지금 살아가는 어린이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주면, 어린이들도 언젠가는 우리와 같은 어른이 된다”고 말했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학과 교수 역시 노키즈존으로 선뜻 발을 내딛기 전,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만의 공간이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게 된 세상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주체로 성장할 수 있을까. 이들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또 다른 공간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뭐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영상 제작=정혜미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