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정부를 좀 더 지켜봐야하지만 실망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에 실망감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초 대선후보 시절 공약한 사안보다 후퇴한 방안이 발표되면서다. 업계에서도 예상과 다른 정책 추진에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읽힌다.
11일 온라인상에 유출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인수위는 부동산 정책 이행 과제에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 개정’의 이행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설정했다.
안전진단 기준은 그간 재건축 추진의 걸림돌로 꼽혀왔다. 안전진단은 주택의 노후나 불량 정도에 따라 구조의 안전성 여부, 보수비용 및 주변여건 등을 조사해서 재건축이 가능한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면서 대부분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가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재건축 사업이 좌절되며 서울 내 재건축을 통한 주택 공급도 끊겼다.
이에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관련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준공 30년 초과 노후 아파트 정밀안전진단 면제 △안전진단 기준 중 구조안전성 가중치 현행 50%에서 30%로 조정 등이다.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법 개정 없이 국토교통부의 조례만 바꿔도 되는 사안으로 가장 먼저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인수위는 내년 상반기에 추진하기로 잠정결론 지었다. 대선 이후 재건축 기대감에 관련 지역의 집값이 급등조짐을 보이자 속도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은 보합세를 유지 중인 가운데 재건축 기대감이 감도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름세를 기록했다. 12일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이 큰 고양시 일산동구와 성남시 분당구는 각각 0.08%와 0.03%나 올랐다. 대치·압구정동 재건축 위주의 강남구(0.02%)도 가격이 상승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국내 최대 규모 부동산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부동산 스터디’ 한 회원은 “시작하는 정부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안전진단까지 보니 벌써 날아간 공약이 몇 개인가. 제법 실망스럽다”며 “일부 부작용을 예상하고 장기 계획으로 밀어붙여 극복하자는 공약들 아니었는가”라고 의문을 표했다.
건설업계에서도 재건축 규제 완화에 기대를 건 만큼 다소 실망스러운 분위기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금 당장 발표된 게 없기 때문에 일정조정 등을 고려하고 있진 않다”면서도 “건설업계에 좋은 상황은 아니다. 재건축 재개발 일정들이 밀리고 주택 물량도 줄어들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의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 완화 공약도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 대통령은 대선 경선후보 시절 지역과 관계없이 담보인정비율(LTV) 70%로 확대하고 다주택자의 LTV 상한을 30~40% 등으로 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생애 첫 주택 구입 가구 LTV 상한선을 60~70%에서 80%를 높이는 방안만을 올해 안에 추진해야 할 과제로 선정했다. 이외의 규제는 “시장상황을 봐가며 시행 시기를 탄력 조정할 것”이라고 적었다.
부동산 핵심공약이었던 임대차 3법 폐지도 ‘속도조절’을 시사했다. 오는 8월 시행 2년을 맞는 임대차3법과 관련해선 “8월 전후로 임대차 시장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하고, 시장 혼선을 최소화하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이루기 위해 임대차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한다”고 했다.
정책 혼선이 길어지면서 부동산 시장은 ‘관망세’가 짙어졌다. 미분양 주택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최근 미분양 주택 물량은 전국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8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2만7949가구다. 한달 사이 10.8% 증가했다. 5월에도 미분양 물량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주산연)이 발표한 5월 아파트분양전망지수에 따르면 5월 미분양 물량은 8.8%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조현지 기자 hyeonzi@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