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때는 분향소 찾더니…” 백신 피해 가족들 눈물

“대선 때는 분향소 찾더니…” 백신 피해 가족들 눈물

尹대통령, ‘1호 공약’으로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
시정연설서 사라진 백신 부작용 피해자들
“용산에서도 집회할 것…끝까지 사과 받아낼 것”

기사승인 2022-05-20 06:42:01
서울 중구 청계광장 앞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백신 부작용 피해자 가족 이주형(66)씨가 향을 피우고 있다.   사진=정진용 기자

“왜 아무도 사과 한마디, 위로 한마디 안 해주는 건가요. 우리가 뭐 강도질한 거 아니잖아요. 왜 이렇게 괄시받고 살아야 하는지…전 정부나 현 정부나 똑같아요.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백신 피해자와 가족들을 외면하고 있다. 이들은 “누가 분신이라도 해야 관심을 가져줄 건가”라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회에서 첫 시정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59조 4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통과를 요청했다. 방역 조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600만~1000만원의 손실보전금을 추가로 지급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또 오미크론 확산에 따른 진단·검사비와 격리 및 입원 치료비, 생활지원비와 유급휴가비 지원, 치료제 100만 명분과 충분한 병상 확보 등에 2조6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도 했다.

15분 안팎의 시정연설에서 백신 부작용 피해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 리스트 윗쪽에는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국가책임제’가 있었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의 인과관계 증명 책임을 정부가 부담하고, 보상금과 치료비를 선(先)지급하는 내용이 골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회에서 시정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정연설서 언급 없던 백신 부작용 피해자…실망 한두 번 아냐”

“솔직히 기대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다들 실망이 커요.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소상공인이랑 같이 이야기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쏙 빼 버리니까…”

지난 17일 서울 청계광장에 세워진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합동 분향소. 흰색 천막 두 동은 적막했다. 분향소가 세워진 지는 4개월이 다 되어간다.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코백회) 회원들이 돌아가며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코백회 회원 이주형(66)씨는 연신 물을 들이켰다. 

이씨도 윤 대통령 시정연설을 유튜브로 봤다. 보고 난 뒤 기분을 묻자 “다들 많이 실망했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1월 철거 권고를 했던 서울 중구청은 최근에는 잠잠하다. 이씨는 “지방선거가 다가와서인지 이제는 누가 나가라는 소리는 안 한다”면서 “전기를 쓸 수 있다면 선풍기라도 틀 텐데 여름이 걱정이다”고 했다.

현 정부는 이전 정부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난달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백신 이상 반응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질환을 확대하고, 의료비 지원 한도를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사망 위로금도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지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인과성 입증 국가 책임과 개별 사례 중심의 인과성 평가 등 코백회 핵심 요구 사항은 반영되지 않았다.

백신 피해자 가족들은 “선거 기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며 “피해자와 가족을 두 번 죽이는 행동”이라는 입장이다. 김두경 코백회 회장은 “윤 대통령, 국민의힘 의원들이 분향소 와서 ‘백신 피해자 특별법’을 분명 약속하지 않았나”라며 “인수위에도 두 번이나 서한을 보내 백신 부작용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답변이 없었다. 지금 정부도 못 믿겠다”고 했다.
서울 중구 청계광장 앞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희생자 합동 분향소 앞에 세워진 백신 부작용 사망자 현황표 보드.   사진=정진용 기자

시간 지날수록 깊어지는 고통…외로운 피해자들

지난달 30일 기준 코로나19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 건수는 총 7만5074건이다. 심의 건수는 4만5545건(60.7%)이다. 이 중 사망 6건을 포함해 총 1만5948건(35.0%)에 대해 보상이 결정됐다.

피해자 가족들은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정신과를 다니고 약을 먹는다.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다는 생각과 싸운다.

이씨는 31살이었던 아들을 떠나보냈다. 취업 준비생이던 이씨 아들은 지난해 8월28일 1차 접종을 하고 5일 뒤 숨졌다. 그날의 기억은 생생하다. 이씨는 방에서 나오지 않던 아들이 자는 줄로만 알았다. 퇴근 후 아들을 깨울까 하다 혼자 저녁을 먹었다. 오후 9시쯤 이씨 아내가 깨우러 갔을 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씨는 “3시간만 더 빨리 밥 먹자고 깨웠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아빠라는 사람이 애가 죽어있는데 밥을 먹고 있었다”며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흐느꼈다. 분향소를 지키다 아들 또래만 보면 눈물이 난다. 겪은 사람만 아는 고통에 사회에서도 고립돼 간다. 이씨는 “친척, 친구한테 얘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다들 나를 피한다”면서 “죄인이 돼버렸다”고 고개를 떨궜다.

같은날 어머니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A씨(55·여)는 지난 2월 22살 아들을 잃었다. A씨 아들은 화이자 2차 접종 13일 만에 숨을 거뒀다. 제대를 6개월 남기고서였다. 군에서 백신 접종 뒤 사망한 5번째 사례로 기록됐다. A씨는 시시때때로 가슴이 욱하고 눈물이 난다. “정신과 상담과 약으로 버틴다”고 했다. 직장에 나가야 했던 엄마 대신 손주를 금지옥엽 키웠던 외할머니 눈에서도 쉼 없이 눈물이 흘러냈다.

엄청난 병원비에 경제적 부담도 호소한다. 정모(48)씨는 지난해 9월 1차 접종을 한 뒤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머리가 멍하고 빈혈기로 언제 쓰러질지 몰라 직장을 관뒀다. 치료비 마련을 위해 집도 내놔야 한다. 정씨는 “산 사람은 살려야 할 것 아닌가”라며 “치료비 지원과 백신 부작용 피해자 전담 병원 지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코백회에서 내건 백신 부작용 중증 피해 사례 현수막.   사진=정진용 기자

해외 백신 부작용 보상은 어떻게...“사과받고 싶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개별 사례 중심의 인과성 평가 △백신 인과성 인정 질환 범위 확대 △백신 부작용 판단에 있어 주치의·역학조사관 의견 반영 △백신 접종 피해자의 치료비 및 생활비 선지급 후정산 △백신 접종 후 발생한 이상 반응의 질병 코드화를 요구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중증 장애 또는 사망이 발생할 경우, 인과성이 인정된다면 일괄 12만 파운드(한화 약 2억원)를 지급하는 백신 피해 지급금 정책을 시행 중이다. 노르웨이는 환자 상해법 제3조에서 (부작용)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의료 제공의 오류 또는 실패로 인한 것으로 간주하는 규정이 존재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3월 발간한 ‘백신 부작용 피해자 보상 규정 및 실효성 제고를 위한 개선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백신접종이 국가 차원에서 강력히 권고됐음에도 불구하고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에 대해 정부가 법적 한계를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백신 접종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 보상은 입법,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다가올 감염병에 대해서도 백신을 신뢰하지 않은 국민 우려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상과 별개로 피해자 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건 사과다. 부작용을 책임질 테니 안심하고 백신을 맞으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다. 코백회는 지난 14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귀향한 경북 양산 사저를 찾아 항의했다. 오는 28일에는 용산역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다.

김 회장 아들은 지난해 3월 취직 열흘 만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뒤 팔다리가 마비됐다. 그는 “건강하던 아이가 백신을 맞고 갑자기 영구장애가 생겼다. 정부도 정확한 원인을 모르면서 어떻게 ‘백신 때문은 아니다’고 딱 잘라서 말할 수 있나”라며 “평생 아이만 보고 살아왔다. 아이를 위해서 사과를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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