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에 이어 이번에는 ‘원숭이두창’ 확산으로 세계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원숭이두창은 사스, 신종인플루엔자, 에볼라, 메르스처럼 인수공통 감염병(동물이 사람에게 옮기는 감염병)이다.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앞으로 인수공통 감염병이 늘어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24일 기준 유럽, 미국, 이스라엘, 호주 등 18개국에서 원숭이 두창 감염 및 의심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확진 171명, 의심 86명으로 집계됐다. 확진자 수는 영국 56명, 포르투갈 37명, 스페인 41명 등이다.
원숭이두창은 중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풍토병이다. 사람 두창과 유사하지만 전염성과 중증도는 낮다. 1970년 콩고에서 첫 인간 감염이 보고됐다. 풍토병화되지 않은 유럽, 미국, 호주 등지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치명률은 3~6% 수준이다. 의심 증상은 38도 이상 발열, 오한, 두통에 더불어 얼굴을 시작으로 손, 발에 나타나는 수두와 비슷한 수포성 발진이다. 잠복기는 3주다. 반드시 성적 접촉이 아니더라도 밀접접촉으로 체액과 호흡기 침방울 등을 통해 전염된다.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등 특정 대상에게만 옮겨지는 병은 아니다.
두창 백신을 사용하면 85%의 예방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 국가에서는 벌써 백신 확보에 나섰다. 한국 정부가 보유한 두창 백신은 3502만명분이다.
국내 유입사례 없지만...“이미 들어왔을 가능성 충분”
아직 국내 유입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국외 환자 발생 증가에 따라 국내 유입 가능성도 점차 증가하는 상황이다.
국내에 유입됐지만 아직 보고가 안됐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천병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아프리카를 방문했거나 아프리카 야생 동물을 통해서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 방문 이력이 없는 사람 사이에서 전파가 일어난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면서 “감염병 감시체계가 좋은 유럽, 북아메리카에서 먼저 보고가 되고 있는데 한국이라고 해서 특별한 예외는 아닐 것”고 말했다.
천 교수는 “원숭이두창이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강력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심환자가 국내에서 몇 명 나온다고 해서 공포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면서 “일단 지금은 어떻게 사람간 전파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예방학과 교수 역시 “여행 문턱이 낮아지고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국내 유입 사례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다만 두창 백신 접종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질병관리청이 보유한 두창 백신은 엄밀히 말하면 생물테러 대응 등 비상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며 “원래 정해진 목적이 있는데 전용하기 위해서는적절한 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또 두창 백신이 부작용이 있는 만큼 백신 접종 대상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방역당국은 일단 원숭이두창 발생 국가를 방문하고 온 여행객에게 입국시 발열체크와 건강상태 질문서를 징구하고 귀국 후 3주 이내 의심증상이 있을 경우 즉시 질병관리청 콜센터로 연락하도록 안내한다는 방침이다. 또 정부는 이날 “당장 일반 인구에 대한 두창 백신 사용 계획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WHO, 연구개발 시급 10대 감염병 선정...모두 인수공통감염병
최근 10년간 새롭게 발생한 인수공통 감염병은 약 40여종에 달한다. 지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속 발생 및 유행이 가능하다며 연구개발이 시급한 10대 감염병을 선정했는데 모두 인수공통 감염병이었다.
WHO가 선정한 10대 감염병은 △크리미안콩고출혈열 △필로바이러스(에볼라, 마버그) △고병원 코로나(사스, 메르스) △라싸 △니파 △리프트계곡열 △치쿤구니야열 △지카 바이러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 △ 신종질환이다.
인수공통 감염병은 전쟁 다음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경제손실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스로 774명이 사망했고 경제손실은 500억원에 이르렀다. 신종인플루엔자로는 1만8500명이 사망했고 300억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했다. 에볼라로는 1만1316명이 숨졌고 22억원의 경제손실을 초래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도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인수공통 감염병은 대부분 야생동물로부터 유래했다. 지난 2019년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감염병의 60% 이상이 인수공통 감염병이고 20세기 이후 발생한 신종 감염병 75% 이상이 야생동물로부터 비롯됐다.
기후변화의 역습...“인류가 판도라 상자 열었다”
인수공통 감염병 증가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 가뭄 등 극단적 기상 현상은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1998년 말레이시아에서 발생, 1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니파 바이러스가 대표적 사례다. 니파 바이러스 숙주인 과일박쥐는 산불과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서식지에서 살기 어려워지자 양돈 농장에 먹이를 찾기 위해 드나들었다. 바이러스는 과일박쥐, 돼지를 거쳐 인간에게 전파됐다.
야생동물 식용과 더불어 토지 황폐화, 자원 채굴 등 무분별한 개발도 인간을 야생 동물에 노출시켰다. 유엔환경계획(UNEP)는 지난해 연구보고서를 내 “동물 매개 전염병으로 가축 식용 의존도가 높고 야생동물과 근접 생활을 하는 비교적 가난한 이들이 더 피해를 봤다”면서 “정부가 지속가능한 토지 관리를 위한 보상 체계를 구축하고 생태계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 교수는 “인수공통 감염병이 증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면서 “여행, 교역, 개발 등으로 인간이 야생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인구가 도시에 밀집하고, 면역력이 낮은 고연령대 인구와 만성질환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는 점도 감염병 확산 위험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인류가 정글을 파괴하고 개발을 계속 하면서 한마디로 판도라 상자를 연 격이다. 인류 스스로 인수공통 감염병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면서 “체계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