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 결과 17곳 중 9곳에서 진보, 8곳에서 보수 성향의 후보자가 당선됐습니다. 2018년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승리한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결과인데요. 진보 교육 전성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향후 교육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여 학생과 학부모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울 자사고·외고 폐지될까요?’란 제목의 글을 올라왔습니다. 작성자 A씨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3선에 성공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 기조를 이어갈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할지를 두고 온라인 투표 했는데 7일 기준 총 238표 중 159표(66.8%)가 일반고로 전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79표(3.2%)만이 전환을 예상했죠.
교육감 선거 이후 맘카페, 지역 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같은 글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보수·진보 교육감 성향에 따라 자사고·외고·국제고 이슈 등 지역별 교육 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혼란스러워하거나 궁금해하는 내용이 상당수입니다.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이모씨(48)는 “어릴 때부터 통역사를 꿈꾼 아이가 외고 진학을 희망해 진학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데 모든 상황이 불투명해 불안하다”며 “정권이 바뀐 만큼 유지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놓고는 현 정부와 진보 성향 교육감들 간 갈등이 예상됩니다. 앞서 전임 문재인 정부는 2025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모두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는데요.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중 ‘다양한 학교유형을 마련하는 고교체제 개편 검토’가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진보 교육감이 여전히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사안에 따라 윤석열 정부와 팽팽하게 대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실제 조 교육감은 기존 추진하던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를 밀어붙인다는 입장이죠.
이 때문인지 한 학부모는 커뮤니티에 “조 교육감과 교육부 중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데 누구의 힘이 더 클까”란 질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교육청이 정책을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정부와 교육청이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다르면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 2014년 자사고 폐지를 놓고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가 극심한 갈등을 겪은 바 있습니다.
또한 진보 교육감의 대표 정책이었던 혁신학교 확대도 동력을 잃을 것이란 평가가 나옵니다.
혁신학교는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경기도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한 진보 교육감표 교육정책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지난 2009년 경기도교육감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된 이후 13년 만에 임태희 당선자가 첫 보수 교육감에 올라 대대적인 손질이 예상됩니다.
임 당선인은 지난달 교육감 후보자 토론회 당시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의 역차별이 있는데 이는 헌법에 따른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와 상치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달 3일에는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혁신학교를 추가로 지정하는 것은 보류하겠다”고 했고요.
경기도 내 초·중·고등학교 중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57%에 달합니다. 공교육의 획일적인 커리큘럼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학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도입돼 처음에 인기를 얻었지만 학력 저하 문제로 기피 대상이 됐습니다. 선거 기간에도 경기 일산 하남 등에선 일반 학교를 혁신학교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시위에 나설 정도로 반발이 거셌는데요.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박모씨(40)는 “몇 달 전 혁신학교 전환을 두고 아이 학교에서 찬반 조사가 있었는데 반대가 많아 백지화됐다”며 “혁신학교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론 대입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어렵다고 본다. 학력 저하도 걱정이지만 혁신초등학교를 나와 일반 중·고등학교에 가면 적응이 힘들 것 같아 반대했다”고 했습니다.
보수 교육감 체제 하에서 혁신학교 입지는 줄어들고 공교육 틀 내에서의 학력평가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보수 후보들은 선거 과정에서 진보 교육감 8년 체제로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됐다며 학업성취도 진단평가의 강화를 통해 기초학력을 신장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교육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0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중3, 고2 학생들의 국어·수학·영어 보통학력(3수준) 이상 비율은 1년 전에 비해 줄어든 반면 기초학력(1수준) 미달 비율은 늘었습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중학교 국어의 경우 2017년 2.6%에서 2020년 6.4%, 수학은 7.1%에서 13.4%, 영어는 3.2%에서 7.1%로 급증했습니다.
교육감 성향에 따라 교육 정책 혼란이 불가피하게 된 가운데 정치적 갈등을 벗어나 교육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좋은교사운동은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우리 학생들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며 “이번에 당선된 교육감들은 자신의 정치적 지형이 아닌 학생들의 배움을 중심에 두는 교육 정책들을 펼쳐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