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방역 첫 관문 ‘공항’, 감염병 감시체계 촘촘해졌을까 ②집단감염, 다음엔 막을 수 있을까 ③디지털+대면’ 영업 빛나지만…그림자는 깊다 ④코로나19 끝나니 인플레 위기 |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펜데믹이 엔데믹(풍토병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언제 다시 확산세가 커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설령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감염병과의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가 차례로 지나간 후 코로나19가 왔던 것처럼 또 다른 신종 감염병이 언제든 우릴 공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엔(End)데믹은 앤(And)데믹이다.
쿠키뉴스는 언제 다시 우리를 덮칠지 모를 감염병에 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살펴봤다. 먼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코로나19가 모두 해외에서 유입됐기에 ‘공항’의 감염병 감시체계를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국내에 들어온 감염병이 ‘종교시설’, ‘콜센터’ 등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을 통해 크게 확산한 점을 되짚어본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당시 ‘예견된 재난’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막을 수 있었지만, 위험을 묵인해온 탓에 발생한 인재라는 얘기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집단감염 취약시설을 돌아보며 또 다른 감염병이 확산될 시 악몽이 재현되지 않을 수 있을지 살펴봤다.
방역지침 유명무실… 불안감 여전한 콜센터 상담원들
코로나19는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열악한 업무환경에 처한 콜센터 노동자들 사이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2020년 3월, 서울 구로구 에이스손해보험 콜센터에서 170여명의 상담원이 감염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콜센터 상담원의 집단감염이 이어졌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콜센터 예방‧대응지침’을 2020년에만 3월, 8월, 11월 3차례 내놨다. 사무실 좌석 간격 1m 이상 유지, 투명 칸막이나 가림막 설치, 주기적인 환기 등 업무환경 개선과 연차·휴가를 자율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등을 주문했다. 콜센터 등 밀집사업장에서의 ‘고위험 사업장 공통 감염관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재택도 권고했다.
다만 정부 방역지침은 유명무실했다. 현장에선 “바뀐 건 가림막 높이 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콜센터 상담원들은 여전히 방역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콜센터는 전염성이 강한 질병에 취약한 환경이다. 300여명이 한 층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일하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엔 ‘칸막이’가 전부다. 창문이 아예 없거나 좁은 틈으로만 열리는 탓에 환기도 어렵다. 밀폐된 공간 속에서 콜센터 상담원들은 8시간 동안 쉼 없이 상담 전화를 받는다. 집단감염 사태가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왔던 이유다.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만난 민주노총 A시중은행 콜센터 지부장은 “펜데믹 상황에서 영업점 폐쇄 등으로 콜센터 업무량은 늘어났지만 노동환경은 더욱 악화됐다”며 “코로나19 사태 땐 국가적 재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참았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콜센터 상담원들에게 ‘증상이 있으면 쉬기’라는 당연한 지침은 적용되지 않았다. “한 콜센터 상담원은 관리자에게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말은 ‘쉬고 싶어서 거짓말한다’는 오해였다. 실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출근을 계속했고, 그게 집단감염 사태로 번졌다”고 전했다.
환기가 어려운 구조도 집단감염에 역할을 했다. “창문이 있어도 점심에 먹은 도시락 냄새가 퇴근 때까지 진동할 정도”라고 증언했다. 환기가 불가능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콜센터 상담원들이 감염병에 취약한 업무환경을 개선해달라고 목청껏 외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들이 ‘하청노동자’인 탓이다. A시중은행의 한 콜센터 지점만 해도 6개의 용역업체가 실적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다.
근로 개선은 원청인 은행의 몫이지만, 콜센터 상담원은 하청업체 직원이기 때문에 바꾸지 않아도 책임이 없다. 원청이 하청에게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르라고 강제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하청이 방역지침을 따르다 보면 다른 하청업체와의 실적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에 직원에게 연차 사용 등을 권장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그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 원청에 책임이 있다는 법 한 줄만 있었어도 콜센터 내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줄줄이 발생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라며 한숨을 쉬었다.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콜센터 상담원들은 다음 감염병이 와도 같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는 “코로나19든 원숭이두창이든 어떤 감염병이 와도 콜센터는 가장 빨리 확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실효성 없는 정부의 방역지침 속에서 우리는 언제 감염될지 몰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음 감염병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업무환경 개선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젠 오답노트를 적어야 할 때라고 제언한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한 칸씩 띄어앉기 등 정부 지침 자체는 방역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켜지지 않아서 문제”라며 “이대로라면 다음 감염병이 와도 똑같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증상이 있을 시 쉴 수 있어야 한다. 백신 휴가 등 유급병가를 보장해야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환기’라도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혜숙 경희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실내공기를 통한 감염전파 방지를 위해서 실내 환기는 필요한 조치다. 오염원 농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방역당국의 지침을 준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1시간에 5분 정도만 환기돼도 감염 가능성이 30% 줄어든다고 한다”며 “실태조사를 통해 집단감염 취약시설에는 지방자치단체가 환기가 가능하도록 비용 중 절반을 지원하는 방법 등으로 환경개선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방역당국은 방역지침을 강제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청은 16일 쿠키뉴스에 “법개정 또는 각 지자체의 행정명령을 통해 강제하는 방법은 있다”면서도 “거리두기, 환기 등은 강제 조치보다는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무화 하더라도 회사 같은 사적공간에 대한 단속이 원활하게 이뤄지긴 어렵다. 단속을 위한 행정비용 등을 고려할 때 의무화를 통해 해결이 필요한 위급성이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랑제일교회 사태’ 등 국가 방역체제 무력화 시도 막으려면
정부가 방역활동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가 미흡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범죄 양상의 변화’ 보고서를 통해 “현재 감염병 예방조치에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는 경찰관 직무직행법 제2조 7호의 ‘그 밖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라는 개괄적 수권조항”이라며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예방조치에 경찰이 강제권을 행사하면 법리 원칙상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염예방법 관리 주체인 질병청이나 지자체의 부족한 현장 행정력을 경찰이 메우고 있는데, 경찰이 방역 지원에 나설 수 있는 법‧제도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사랑제일교회 집단감염 사태가 대표적이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8월 서울 성북구 사랑 제일교회 등에 확산된 수도권 긴급대응반에 총경 1명, 경정 이하 5명 등이 편성됐다. 방역당국은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주도한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는 110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계했다.
특히 전광훈 담임목사는 사랑제일교회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2020년 광화문역 인근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형 집회를 열어 논란이 됐다. 당시 광화문 집회에서는 1만명 이상의 참가자들이 ‘노 마스크’로 거리를 활보하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 심지어 전 목사는 8월15일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는데도 해당 집회에서 마스크 없이 연설을 했고, 이튿날인 8월17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방역당국은 사랑제일교회와 광복절 대규모 집회를 전국 확산의 기폭제로 판단했다. 8월1일만 해도 국내 발생 확진자는 50명이 채 넘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불법집회로 규정, 전 목사와 해당 교회 관계자들을 집회시위법과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역학조사를 거부·방해하거나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은폐하는 등의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사랑제일교회와 전 목사를 상대로 5억6000만원의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했다. 건보공단은 이들의 총 진료비 예상액을 75억원으로 추정하고 이 중 건보공단이 부담한 치료비를 64억원으로 보고 소송을 제기했다. 구상권 청구를 통해 책임을 확실히 묻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재 재판은 속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 20일 원고 측에 석명준비명령을 통지했다. 석명준비명령은 소장이나 답변서 등에 대한 증거를 제출해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라는 법원의 명령이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앞으로의 감염병 대응을 위해선 특화된 수사부서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질병청 등 방역당국에 특별사법경찰 부서를 설치하고 전문적인 수사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보고서를 통해 “질병청과 지자체는 업무 전문성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특별사법경찰 부서를 만들고 인력을 증원해 선제적인 대응 조치를 이끌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의료계에서도 앞으로의 감염병 대비를 위해 특사경 설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사랑제일교회의 광화문 집회는 경찰의 공권력을 무력화시킨 단체행동”이라며 “질병청에 특사경을 설치해 미리 역할을 했다면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