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데이터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e스포츠에서는 데이터 분석의 중요성이 강조된 지 오래다. 프로 게임단은 최근 양질의 지표를 얻기 위해 다양한 데이터 통계 사이트와 활발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전문 프로 분석관도 속속 등장하는 상황이다. 분석관은 데이터를 해석, 분류하고 재가공해 고유의 데이터를 게임단에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기세파’ 강지문은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분석관이다.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2019년 킹존 드래곤X에서 프로 분석관 일을 처음 시작했다. 이후 KT 롤스터를 거쳐 연세대학교 컴퓨터학과 연구교수를 겸임하고 올해 초부터는 T1의 분석관으로 활동 중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 선수단을 지원한 그는 지난 스프링 시즌 T1의 전인미답 전승 우승에 기여했다. 앞선 17일 ‘제우스’ 최우제에게 ‘히드라 갱플랭크’를 조언했다고 알려진 이가 바로 강 분석관이다.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T1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자기소개 부탁한다
T1에서 데이터 분석관을 맡고 있는 ‘기세파’ 강지문이라고 한다.
분석관이 맡은 일은 무엇인가?
일단 분석관은 프로팀 내에서 역할을 분업화하고 전문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직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팀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대 팀 전력을 분석하는 ‘전략 분석관’이라던가, 데이터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데이터 분석관’ 등 세분화 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대회와 스크림(연습경기), 솔로 랭크 이 3가지를 중심으로 해서 정글 경로나 아이템 스킬 빌드, 픽밴 등 다양한 세부 정보들을 수집‧분석한다. 이를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e스포츠 분석의 핵심은 무엇인가? 어떤 경로로 데이터를 얻는지도 궁금하다.
지역별로, LCK 내에서도 분석관의 역할이나 분석 방법은 개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다. 데이터를 중심으로 분석을 하는 팀들도 있는 반면에, 게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인게임 분석이 주가 되는 그런 팀들도 있다. 따라서 어떤 것이 e스포츠 분석의 핵심이라고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과 접근성이 높은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편견이나 주관 같은 것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이면서도 정확도가 높은, 팀 구성원들이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만들어야 된다고 본다.
나는 기본적으로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분석을 하는 편이다. 라이엇 API나 분석 업체 혹은 주요 사이트로부터 자료를 수집해서 나름의 통계를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 해석을 하고 있다. 동시에 (솔로랭크‧스크림) 관전이나 인게임 테스트, 실전 경험을 통해서 교차 검증하고 해석해서 신뢰성과 접근성이 높은 데이터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분석관도 선수들과 대면해 토의를 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선수들을 통해서 직접 메타를 토의하기보다는 코칭스태프들에게 먼저 데이터를 전달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선수들에게 반영되는 형태다.
여전히 분석보다는 직접 경기에서 뛴 경험들을 중시하는 선수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일단 최근엔 분석과 통계가 크게 발달한 점도 있고 중요성들도 많이 부각이 되면서 대부분의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은 통계 및 데이터를 중요시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데이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다만 데이터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나 활용하는 방안들 사이에는 의견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솔로 랭크 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했을 때 의견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팀 게임이나 코칭 프로세스 같은 것들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LoL에 대한 관심을 계속 가지고, 플레이하면서 경험을 쌓고 있다.
‘15분 골드 격차’ 등 팬들이 모르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프로게임단만의 데이터가 있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스스로 가공해서 만들고, T1만이 사용하고 있는 데이터들이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언급했을 때 전략 노출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힘들다.
‘기세파’에 집중해보겠다. 화학 관련 전공자다. e스포츠 분석과는 사뭇 거리감이 있다
전공 자체는 분석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공학 박사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많은 연구들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시뮬레이션 최적화 모델 이런 것들을 활용하는 연구들을 많이 진행했다. 첨언하자면 박사를 하면서 냈던 논문 중에는 ‘양자역학을 이용한 화학 반응 모델링’도 있다. 그런 모델링이나 시뮬레이션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더욱더 통계와 데이터 활용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다.
‘알파고 이후 프로바둑의 변화’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더라. e스포츠와 연관이 있을까?
LoL 이전에는 바둑에서 최상위 플레이어였다. 여러 대회도 나갔고 인터넷 바둑에서도 나름 잘했다. 닉네임 ‘기세파’도 바둑 기풍에서 비롯된 거다.
바둑과 e스포츠 자체가 많은 점에서 닮아 있고 본질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예전에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 중심으로 자리 잡았을 때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간의 비교 분석이 굉장히 많기도 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1대1 전략 게임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바둑의 ‘집’이라는 개념과 스타크래프트의 자원, 혹은 멀티의 개념들이 굉장히 유사하다. 실제로 바둑 선수들의 기풍과 스타크래프트 선수들과 연결시키는 그런 글들도 올라오곤 했다.
이세돌과의 바둑으로 화제가 됐던 구글 딥마인드 같은 경우, 초창기엔 80년도에 출시된 단순한 게임을 가지고 학습을 시켰다. 이후엔 바둑으로 넘어갔고 그걸 정복한 후엔 ‘알파스타’라고 해서 ‘스타크래프트2’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확장됐다. 영문권에선 바둑을 달리 말해 ‘the Game of Go’라고 일컫기도 한다. 게임이라는 본질에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병행‧상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킹존 드래곤 X에서 처음 분석관 일을 시작했다
2019년도 초에 한창 커뮤니티에 분석 글을 올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 때 많은 호응을 받았다. 프로팀들에게도 연락이 왔는데, 그 중 한 분이 ‘슈프림’ 최승민(현 KT 롤스터) 코치였다. 2019 스프링 시즌 도중에 강동훈 감독님과 슈프림 코치, ‘천주’ 코치, ‘멘탈’ 코치가 새벽에 직접 학교에 방문해서 설득했다. 그 때부터 분석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전문적으로 프로팀 분석을 맡은 건 당시가 처음이었는데,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다
지금의 내가 3년 전의 모습을 돌아보면, 스크림과 경기 준비 등 전반적으로 프로 경기에 대한 이해들이 부족했다. 그 때는 솔로랭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강했다. 분석 방법이나 해석 등도 아무래도 지금보단 많이 미숙했다. 다행히 지난 3년간 경험을 쌓고 다양한 분석 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스스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그 때보단 많이 개선이 된 것 같다.
올해 초부터 T1에서 일하게 됐다. 사측 공식 메일로 돌연 지원서를 보냈다고 하던데
맞다(웃음). 2020년부터 2년간 KT 롤스터에서 일했는데, 감독님과 코치님들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다만 당시는 범위가 많이 한정적이었고 내 업무에 익숙해지기도 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이 생길까 많이 두려웠다. 내 발전을 도모하고, 열정적으로 도전하기 위해서 새로운 팀에 도전하고자 했다. 그래서 T1을 선택했다.
외부에서 바라본 T1은 어떤 팀이었나?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팀이라고 생각을 했다. 동시에 좋은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갖고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선수들을 위한 훌륭한 인프라와 프런트 인력을 갖추고 있는 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종합적으로 최고의 팀이라고 생각해서 함께 좋은 성적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분석관으로서 T1의 어떤 점을 보완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다양한 분석들을 통해 선수와 코칭 스태프들에게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존 감독, 코치님들의 지도방식에 더해서 내가 그간 쌓아온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개선된 분석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지원한다면 팀의 승률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 봤다.
다른 분석관들과 비교해 나만의 강점이 있다면?
일단 내 강점이라고 한다면 데이터 분석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 스스로 롤에 대한 실전 경험이 많다는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롤에 대한 실적감각을 바탕으로 학문적 연구결과들을 현장에 다방면으로 적용할 수 있다.
박사 과정을 거쳤고, 지금은 연구 교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본적인 데이터 수집이나 분석을 비롯해서 시뮬레이션 수립과 통계, 최적화 모델링 등에 많이 익숙하다. 이런 다양한 분석 방법들을 통해서 팀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LoL을 하면서 높은 랭크(다이아몬드 1)도 기록해봤고, 여러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해서 입상한 경험이 있다. 분석관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는 나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공략이나 분석글들을 올려 호응받기도 했다.
분석관으로 활동하면서 정말 분석하기 어려웠던 선수가 있나
이건 진짜 ‘페이커(이상혁)’다. 진심으로 페이커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페이커가 벽이라고 느꼈던 적이 있다. 2019년도 스프링 시즌에 킹존과 T1이 플레이오프에서 맞붙었다. 3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 페이커가 ‘아지르’를 상대로 ‘아칼리’를 뽑았다. 이 픽 자체도 굉장히 일반적인 픽은 아니다. 이 구도에선 대부분 아지르가 후픽 카운터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제 전적‧데이터 상으로 봤을 때도 아지르가 일반적으론 유리한 매치업이다. 기억하기론 당시 페이커가 아칼리를 못한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뒤집고 결정적인 순간에서 예상 밖의 픽으로 게임을 캐리했다. 아직도 그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제목이 기억난다. ‘경외하라, 나는 섬기는 이 없는 페이커다’. 정말 인상이 깊게 남았고 대단한 선수라고 생각했다.
T1의 지난 스프링 시즌은 어땠나
프런트의 운영이나 코칭스태프의 지도가 굉장히 훌륭했다. 여기에 더해 선수들의 뛰어난 실력이 결합되면서 기록적인 시즌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선수들의 성장이 많이 인상적이었다. 시즌 초반에는 조금 미숙한 측면도 있었지만 중반에 이르러서는 5명 선수 뛰어난 팀워크와 운영 능력을 갖추게 됐다.
팀들마다 추구한 메타들이 굉장히 달랐는데, 나는 결국 T1이 우승한 것은 다양한 메타를 소화하고 다양한 운영 방식을 소화할 수 있는 팀이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스프링 시즌엔 다양한 승리 공식들이 존재했다. 예를 들자면 ‘케이틀린-카르마’ 등으로 라인전 스노우볼을 굴린 팀들도 있었고, 반대로 ‘코르키’로 상징되는 극한의 후반 조합을 선호하는 팀들도 있었다. 팀마다 해석도 굉장히 달랐고, 추구하는 운영 방식도 굉장히 달랐는데 T1은 그런 다양한 운영 방식들을 전부 다 소화할 수 있는 팀이었다.
앞서 답한 것처럼 ‘케이틀린-카르마’를 앞세운 스노우볼 조합을 선호하는 팀이 있고, ‘코르키’를 이용한 후반 지향형 플레이를 선호하는 팀이 있지 않나. 이 가운데 정답이라는 게 있을까. 잘하는 팀이 메타를 만드는 것인지, 메타는 정해져 있는데, 이에 잘 적응하는 팀이 강팀인 건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다 정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프링 시즌엔 코르키가 좋았던 것도 맞고 케이틀린과 카르마가 좋았던 것도 맞다. 그런 중요한 픽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그 픽을 해서, 그 픽이 좋아서, 그런 메타가 좋아서 라고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있다.
MSI에서 RNG에게 아쉽게 패했다. 메타 해석이 달랐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T1의 메타 해석이 달랐다 보다는 메타 적응을 RNG가 더 잘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번 MSI에서 RNG가 종합적으로 T1보다 더 잘했고, 그 중 하나로 메타 적응에 있어서도 RNG가 더 잘했다고 생각한다.
RNG의 어떤 플레이가 인상적이었나?
T1과 비교하면 확실히 한타 중심의 플레이가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팀이었다는 거다. 리스크 있는 플레이를 큰 경기에서 꺼내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최근 국제대회 결승에서 ‘블루’ 사이드가 무패다. 진영 유불리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일단은 패치 버전마다 다르다고 말해야 될 것 같다. 확실한 OP(오버파워) 카드가 많은 패치 버전에서는 이를 선점하기 좋은 블루팀이 유리한 경향이 있다. 이번 MSI 패치 기준으로 설명을 한다면 OP 카드들이 많았고 자연스레 레드팀에서 강요되는 픽들이 많았다. 게다가 레드 사이드에서 뽑은 OP 카운터픽의 효과도 미미했다. 블루팀이 밴픽이 더 편한 측면은 있었고, 실제 MSI 통계에서도 블루팀 승률이 레드팀보다 높게 나타났다.
대격변 패치에 가까운 내구도 패치가 서머 시즌에 적용됐다. 어떤 양상이 펼쳐질 거라 보나
단순히 모든 챔피언의 내구성 관련 기본 능력치를 조정한 것 외에도 다양한 시스템 변화로 인해 챔피언간 밸런스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대회에선 12.10 패치가 적용돼 있는데, 이후 패치 버전에서도 계속해서 밸런스 변화가 심하다. OP였던 챔피언이 아예 쓰이지 않는 챔피언이 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속속 나온다. 때문에 지금은 ‘어떤 챔피언이 좋다’, ‘어떤 메타가 될 거다’라고 예상하는 것보단 핵심적인 챔피언들과 빌드를 확인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게 중요하다.
올해 목표, 아울러 분석관으로서 궁극적인 목표를 말해달라
T1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가장 큰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계속해서 분석가로서 발전하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