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6기와 7기에 걸쳐 8년 동안 전북의 행정 수장으로 일한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퇴임과 동시에 정치 일선에서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냉철한 머리로 일하는 유능한 행정가이자, 따뜻한 가슴으로 일하는 착한 정치인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송하진 지사가 지난 4월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발표한 기자회견문 중 한 대목이다. 경제학자 마샬(Alfred Marshall)이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취임 연설에서 언급한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가슴(cool head but warm heart)’이란 말을 평소 좋아했던 송 지사는 16년에 걸친 지방정치 행로에 실용주의에 뿌리를 두고 따뜻한 정치인이 되고자 노력했다.
송 지사의 꿈과 목표는 ‘전북발전’으로 집약된다. 제조업 기반이 부족한 전북에선 기업의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데에 그는 주목했다. 전북 안에서 실현 가능한 돌파구를 찾았다. 전북이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전북을 바라보는 그의 냉철한 시선이 힘을 발한 지점이었다.
전주시장 시절 추진한 전주한옥마을 명소화 사업과 탄소산업은 도지사 송하진을 만든 원동력이 됐다. 그는 전주한옥마을과 한스타일 사업을 통해 전주시를 연간 관광객 천만명이 찾는 관광도시로 바꿔놓았고, 일본이 점유한 탄소섬유 시장을 효성과 손잡고 개척해 대한민국 탄소산업의 시작을 알렸다.
특히 탄소산업은 전북의 미래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탄소산업은 지역에서 시작한 산업이 국가전략산업에까지 이른 유일무이한 사례로 송 지사는 지금의 탄소산업 생태계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전주시장 시절 탄소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송 지사는 도지사 취임 이후 탄소소재법 제정을 주도해 국가 주도 탄소산업 육성 계기를 마련했고, 법 개정을 통해 탄소산업의 총괄 거점인 한국탄소산업진흥원을 전북에 안착시켰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몸값이 급상승한 탄소섬유를 국가전략산업으로 각인시켰고 효성의 1조원 투자협약 체결, 탄소산업 소부장 특화단지와 스마트 그린산단 지정, 탄소특화산업단지 국가산단 지정 등 기업투자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냈다.
이같은 성과를 토대로 지역의 낙후된 산업지도도 과감히 바꿨다. 전북연구개발특구와 군산강소특구, 친환경차 규제자유특구 등 R&D기반을 만들었고, 농촌진흥청 이전과 농생명 SW융합 클러스터 추진 등 농생명산업의 연구기능도 강화했다. 전국 유일의 홀로그램 기술개발 사업 확정과 확장현실 소재부품장비 개발지원센터 유치 등 신기술 선점에 주력했다.
새만금 개발에 구체성과 속도를 더한 것도 송 지사의 공이 컸다. 50년 숙원이었던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을 확정해 공항오지 전북의 역사를 종식하고, 항만과 철도, 도로 등 이른바 교통 트라이포트(Tri-Port)를 구축해 내부개발의 동력을 갖췄다. 또한 새만금 개발공사 설립과 새만금 개발청 군산 이전으로 새만금 개발을 주도할 행정체제를 정립하고, 군산, 김제, 부안이 참여하는 새만금 권역 행정협의회를 구성해 상생합의안 도출 등 지역갈등 해결의 물꼬를 텄다. 환경생태용지 2단계 사업 추진,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 등 내부개발이 본격화되고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사업이 추진되면서 SK컨소시엄 2조원 투자와 GS글로벌 새만금 특장차센터 구축 등 대기업의 투자도 이끌어냈다.
이렇게 확보한 기술력과 SOC는 산업의 혁신과 선점에 힘이 됐다. 주력산업인 자동차와 조선산업은 혁신을 통해 고도화했다. 그 결과 GM군산공장이 떠난 자리에는 명신 등 전기차 기업이 참여하는 군산형 일자리가 들어왔고, 상용차 자율주행 테스트베드 구축과 노후산단 대개조도 시작됐다. 조선산업은 중소선박 기자재 품질 고도화로 기술력을 높였고, 현대중공업을 설득해 조선소 재가동을 이뤄냈다.
재생에너지 산업으로 시대의 화두가 된 탄소중립 이슈도 선점했다. 새만금 재생에너지 클러스터 비전을 선포해 새만금을 풍력,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의 메카로 육성했다. 새만금에서 생산된 대체에너지를 활용해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 생산 클러스터 조성을 비롯해 전국 최대 규모 완주 수소충전소 준공, 수소용품검사지원센터 유치 등 수소경제 기반도 빠르게 다졌다.
농도 전북의 농업에도 송 지사의 관심과 지원이 집중됐다. 농민이 농정의 주체가 되는 삼락농정위원회를 출범시켰고 협치를 통해 전국 광역 지자체 최초로 농민공익수당을 지급했다. 전국 최초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를 시행했다.
송 지사는 농업의 고부가가치화에도 공을 들였다. 전국 최초 그린 바이오 벤처캠퍼스 조성사업에 선정됐고, 종자와 식품, 미생물·농기계·첨단농업 등을 연계한 아시아스마트농생명밸리 사업을 추진했다. 국내 최초로 김제스마트팜 혁신밸리와 식품전문산단 국가식품클러스터를 준공했다.
전북의 선비 유재 송기면 선생과 서예대가 강암 송성용 선생을 조부와 부친으로 둔 송 지사는 예술과 문학에도 조예가 깊다. 그런 만큼 전북지역 문화와 예술에도 큰 관심을 쏟았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전라감영복원, 동학농민혁명 황토현 전승일 국가기념일 제정, 곰소천일염업 국가중요어업유산 지정 등 문화유산의 정체성 확립과 함께 전라유학진흥원과 서예비엔날레전시관 건립 추진, 국립익산박물관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전북학연구센터를 열어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했다.
전국 최초 전북투어패스 도입과 태권도원 개원, 국립신시도자연휴양림과 전북산하 1000리길 조성도 송지사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사업들이다. 또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아시아태평양마스터스, 새만금세계잼버리 등 굵직한 대규모 행사를 유치하기도 했다.
전북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다양한 국내외 행사를 유치해 도민의 자긍심을 드높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거듭된 낙후로 잃어버린 ‘호남제일도시’라는 영광을 찾고, 도민들이 전북 변혁의 주역으로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런 그의 생각은 ‘전북 몫 찾기’와 ‘전북자존의 시대’ 등 도민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공동체적 활동으로 확산됐고, 국가예산과 인사, 정책 등에서 전북 몫을 확실히 찾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했다.
민선 6기에서 7기로 순탄하게 이어진 굵직굵직한 성과와 인지도, 우호적 여론을 바탕으로 송 지사는 역대 전북도지사 중 최초로 3선에 도전, 예상치 못한 컷오프 암초에 걸려 그 꿈은 좌절됐다.
도당위원장이 공심위에 참여하는 등 석연치 않은 컷오프 과정에 반발 여론도 거셌지만 송 지사는 “그동안 민주당에 대한 은공을 갚으려 한다”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런 그의 기자회견을 두고 과연 송 지사답다는 평이 들려왔다.
퇴임을 앞두고 송 지사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지만 앞으로도 전북을 위해 여러 활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밝혔다.
송 지사는 “네편, 내편 없이 우리편으로 모두가 힘을 모아 자랑스러운 전북을 만들 것”이라는 통합의 메시지도 전했다.
전북의 대표적인 행정전문가로, 정치인으로 40년을 전북을 위해 일해 온 송 지사의 퇴임식은 오는 29일 도청에서 소박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전주=박용주 기자 yzzpark@kukinews.com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