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감기약에 마약 성분이… 일본약의 배신 ②낙태·탈모…온라인서 판치는 처방 없는 처방약 ③국민이 알아서 조심해라? 손 놓은 식약처·관세청 |
감기약은 빙산의 일각이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국내 무허가 의약품의 온라인 거래도 만연하다. 부작용은 오롯이 소비자의 몫이다.
검색 몇 번이면 상담사와 연결…‘부작용 없다’며 현혹
경구용 임신중절약 ‘미프지미소(성분명 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은 국내 허가를 받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미프진’이라는 제품명으로 판매 중이다. 일부 해외 합법화된 국가에서도 의료인 처방전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다.
미프진 국내 허가는 1년 넘게 지지부진하다. 온라인상에서는 해외에서 밀수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짜약이 횡행한다. 국내 반입, 거래 모두 불법이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구입은 쉽다. 검색 몇 번이면 미프진 판매업자와 연결된다. 부작용 및 합병증이 발생해도 책임을 묻지 않고 교환·반품·환불은 불가하다는 내용에 동의해야 살 수 있다. 수백 개에 달하는 후기에는 ‘빠르게 배송받았다’, ‘수술보다 약물 중절을 택해서 다행이다’는 내용만 가득하다.
A씨는 최근 이 사이트에서 미프진을 구매했다. 상담사는 A씨에게 “임신 초기 복용은 효과 확실하고 부작용도 없다”고 단언했다. 정품 여부를 묻자 “프랑스 정품약을 비밀 포장으로 국내로 들여왔다”는 대답을 들었다.
입금 이틀 뒤, A씨는 택배 상자를 받았다. 칭칭 감긴 에어캡을 뜯자 비닐봉지에 담긴 약이 나왔다. 성분, 유효기간 등 기본적인 정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외부 포장(박스)이나 첨부문서는 없다. 알약에 낱알 식별표시(의약품을 눈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낱알 모양, 색깔, 문자, 숫자, 기호 등을 인쇄·각인하는 것)도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유명 인사 인도 브로커…너도나도 “연락 방법 알려달라”
한 탈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인도 현지 브로커로 추정되는 인물이 유명 인사다. 기자가 브로커에게 SNS를 통해 직접 접촉해봤다. 영어로 말을 건 지 1시간도 안 돼 “안녕하세요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라는 한국말이 돌아왔다.
브로커는 ‘핀페시아(성분명 피나스테리드)’ 600정, ‘두타놀(성분명 두타스테리드)’ 600정을 10만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600일치, 즉 1년 7개월 분량이다. 두 약 모두 국내 허가를 받지 않은 카피약이다. 또한 150달러(약 19만원) 이하, 자가사용 목적인 경우 6병 또는 3개월 이내 사용분에 대해서만 의약품을 반입할 수 있게 한 관세법에도 위반이다.
주문은 간단하다. 브로커가 건넨 링크 주소로 들어가 주문서를 작성한다. 수수료 5000원을 더한 금액을 해외 송금하면 끝이다. 브로커는 “100% 정품”, “최고 품질”이라며 재차 강조했다.
‘문의하면 답이 느리다’, ‘약 포장지에 곰팡이가 슬어있다’는 후기도 있지만 여전히 브로커를 찾는 이들이 더 많다. 탈모약을 구입하자 무허가 의약품인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를 서비스로 줬다며 만족을 표한 후기도 찾아볼 수 있었다. 지금도 커뮤니티에는 “브로커와 연락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댓글이 잇따른다.
85%가 하나 이상 부작용 경험…“불완전유산·완전유산될지 아무도 몰라”
온라인으로 판매되는 의약품은 품질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지난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온라인 유통 의약품을 검사한 결과 모든 제품이 불량(다른 주성분 포함, 함량 부적합 등)으로 확인됐다. 또 의사 처방 없이 복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모른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미프진의 경우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은 임신 10주 이내일 경우에만 처방할 수 있다. 또 약물복용 후 7~14일 이내에 의료인을 통해 초음파 검사를 하는 등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FDA 가이드에 따르면 미프진 복용 후 약 85%가 한 가지 이상의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며, 8% 이상은 30일 이상의 출혈, 100명 중 2~7명은 유산이 완전히 되지 않거나 출혈이 멈추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에서 산 미프진을 복용한 뒤 과다출혈로 내원한 환자를 수술했던 손효돈 산부인과 전문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환자는 불완전유산으로 결국 흡입수술을 시행했다”면서 “중절약 복용 시 완전유산이 될지, 불완전유산이 될지 사람마다 다르다. 수정란이나 부산물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출혈이 계속된다”고 했다.
이어 “중절은 무조건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해야 한다”며 “온라인상에서 너무 쉽게 중절약을 구매할 수 있고, 안전하다며 책임지지 못 할 말로 환자들을 현혹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불안해하면서도…가성비·편리함 포기 못하는 소비자
탈모약은 남성 호르몬 수치를 떨어트린다. 임산부 혹은 임신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은 피나스테리드가 든 약의 부서진 조각조차 만져선 안 된다. 남자 태아에 기형이 유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약을 투여한 환자에게서는 우울증, 자살 생각을 포함한 기분 변형이 보고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간) FDA는 피나스테리드를 주성분으로 하는 약의 부작용 목록에 자살 위험 경고 문구를 넣도록 요구했다.
두타놀 주성분 두타스테리드 역시 남자 태아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간 기능에 이상이 있는 환자는 복용을 주의해야 한다. 국내에서 환자 387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판 후 사용성적조사결과에서 부작용으로 발기부전 1.9%, 성욕감소 1.3%, 소화불량 0.1%, 여성형유방 0.1%, 불면증 0.1% 등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나이, 건강 상태, 생활패턴 등을 고려해 복용 용량과 시기를 개개인에 맞춰 조정한다. 해외 직구, 구매대행으로 탈모약을 먹는 이들은 전문 의학 지식 없이 스스로 약을 처방해 복용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광주에 거주하는 30대 남성 B씨는 인도 브로커에게서 두타놀을 구입해 복용 중이다. 브레인포그(brain fog·뇌에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력과 집중력 등에 문제가 발생하는 현상), 간헐적 우울증 등 부작용으로 추정되는 증상을 느꼈다. 약 복용 시간을 아침에서 저녁으로 바꾼 것 외에 의사는 따로 찾지 않았다.
출처가 불분명한 약이 건강에 미칠 영향이 걱정되지 않냐는 질문에 B씨는 “당연히 걱정된다”면서도 “그래서 인도 약에 대해서 나름 철저하게 조사를 했고 괜찮다는 결과를 내렸다”고 답했다.
B씨는 앞으로도 인도에서 들여온 의약품을 복용할 계획이다. 가성비가 좋고 구입 과정이 편리해서다. B씨는 쿠키뉴스에 “가장 대중적인 탈모약 ‘프로페시아’를 1년치 처방 받으려면 50만원 이상이 든다. 반면 직구로 프로페시아 카피약을 사면 1년에 5만원 정도다. 10분의 1 수준”이라면서 “또 지방 같은 경우 정보가 없으면 처방전조차 받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탈모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구제 방안이 나타나지 않으면 앞으로도 탈모약 해외 직구·구매대행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