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감기약에 마약 성분이… 일본약의 배신 ②낙태·탈모…온라인서 판치는 처방 없는 처방약 ③국민이 알아서 조심해라? 손 놓은 식약처·관세청 |
탈모약, 중절약, 다이어트제, 집중력 향상제…. 수많은 해외 전문의약품은 어떻게 처방전도 없이 거래되고 국내에 들어오는 걸까.
가장 큰 원인은 약사법과 관세법간의 괴리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약국 개설자와 의약품 판매업자는 약국 또는 점포 이외 장소에서 의약품을 판매해서는 안된다. 특히 전문의약품은 의사 처방이 있어야 구입할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해 의약품을 판매, 알선, 광고하는 행위는 약사법 위반이다.
관세법상으로는 자가사용 인정기준만 맞추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모두 처방전 없이 들여올 수 있다. 관세법에 따르면 소액·소량의 의약품을 자가사용 목적으로 수입할 때에는 요건확인과 관세가 면제된다. 자가사용 인정기준은 물품 가격 150달러 이하이면서 총 6병 또는 3개월 이내 복용량이다. 관세청은 마약류 등 일부 오남용 우려 의약품에 대해서만 수입신고단계에서 처방전을 요구하고 있다.
의약품 판매업자들은 이를 악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불법 의약품을 들여오고 있다. 관세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한달간 특송 및 우편화물로 반입되는 해외직구식품을 집중 단속한 결과, 인도산 발기부전 치료제를 은박지로 감싸고 과자를 동봉해 ‘비타민’, ‘스낵’으로 신고하거나, 겉포장 라벨을 건강기능식품으로 갈아끼우는 사례 등이 적발됐다.
반입량을 제한한 자가사용 인정기준은 유명무실하다. 한 의약품 구매대행 사이트에서는 먼저 6병을 주문한 뒤, 국내 배송이 시작되면 추가로 6병을 주문하면 된다며 자가사용 인정기준 이상 살 수 있는 방법을 공지했다. 하루에 한 알씩 복용하는 탈모약 600정, 1200정을 아무 문제 없이 구입했다는 후기도 온라인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관세법에서 정한 3개월치 복용량을 훌쩍 넘겼다.
의약품 해외 직구, 구매대행 사이트 단속도 쉽지 않다. 식약처는 자체 모니터링과 신고를 바탕으로 온라인을 통한 의약품 판매·광고가 확인될 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사이트 차단을 요청하지만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단속 인력도 충분하지 않다. 식약처 사이버조사팀은 현재 38명으로 식품, 건강기능식품, 축산물, 의약품, 의약외품, 의료기기, 화장품, 마약류 모니터링 업무를 담당한다. 이 중 의약품 모니터링 업무 담당자는 5명에 불과하다.
온라인 불법 의약품 유통 적발 건수에 비해 판매자에 대한 식약처의 고소·고발 등 수사의뢰는 턱없이 낮다. 식약처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지난 2020년 제출한 전문의약품 온라인 판매 광고 적발 건수는 2016년 2만4928건에서 2019년 3만7343건으로 늘었다. 반면 식약처가 불법 판매 광고를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한 경우는 2019년 기준 10건에 그쳤다.업계에서는 정부가 문제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동석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대표는 “3개월분, 6병이라는 자가사용 기준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편의를 위해 임의로 만든 기준이 아닌가 싶다”면서 “자가기준 사용 기준을 바꾸는 문제는 관세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절차가 비교적 간단한 고시 개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해결될 일인데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자가사용 기준 보완을 두고 관세청과 식약처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관세청 측은 “자가사용 인정기준은 식약처 소관”이라며 “관세청은 그저 정해진 기준에 따라 단속을 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식약처 측은 “관계부처와 검토 논의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