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남성들 피해 막다른 길에 닿는 ‘멘’ [쿡리뷰]

불쾌한 남성들 피해 막다른 길에 닿는 ‘멘’ [쿡리뷰]

기사승인 2022-07-14 12:21:51
영화 ‘멘’ 포스터

지울 수 없는 기억을 가진 여자가 있다. 남편이 창밖에 떨어지는 기억이다. 사고인지 극단적 선택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남편이 죽기 직전 퍼붓던 폭언과 자신에게 행한 폭력, 그리고 “이혼할 바엔 죽어버리겠다”는 한 마디 말이 망령처럼 맴돌 뿐이다. 남편의 죽음이 정말 내 잘못일까.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한적한 교외로 떠난 여자는 생각지 못한 일들을 경험한다.

영화 ‘멘’(감독 알렉스 가랜드)은 마음을 치유하려고 영국 시골 마을로 떠난 하퍼(제시 버클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집은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녹색으로 가득한 풍경 속에 오래된 고택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다만 마음대로 떨어진 사과를 베어 먹은 하퍼에게 도둑질이라고 농담하는 집 주인과 오래된 터널에서 만난 발가벗은 괴인, 동네 성당에서 만나 죄책감을 심어주는 신부 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날 밤이 찾아온다.

살인마가 칼을 쫓아오거나, 밤마다 귀신이 괴롭히는 공포 영화와는 다르다. 피부에 닿을 것 같은 현실 속 공포에 가깝다. 맥락에 어긋나는 불필요한 농담과 뜬금없이 몸에 닿는 불쾌한 손, 위로를 가장해 나를 공격하는 말,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는 태도 등 언젠가 현실에서 만났을 법한 불편한 상황이 조금씩 주인공을 옥죄어 오는 식이다. 한 사람에 대한 의심이 다른 사람에게 이어지고, 그것이 점점 확장되어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공포감을 끈질기고 지독하게 재현한다. 주인공 여성이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진 않아 이야기에 몰입할 여유를 준다.

영화 ‘멘’ 스틸컷

아름다운 풍경과 음악은 이야기가 전하는 불쾌감을 극대화한다. 동굴 장면에서 만들어낸 멜로디를 활용한 음악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든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오래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초록 이미지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시청각 요소 모두 초반부부터 후반부까지 같은 톤을 유지하며, 주인공의 감정이나 상황에 의해 달리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마지막 장면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다. 충격적이고 끔찍한 이미지가 긴 시간 이어진다. 나중엔 순간적인 공포나 고통을 넘어 하나의 영상 예술로 보인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순간부터 몰입이 깨질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마지막 장면의 충격을 덜하게 하는 안전장치처럼 느껴진다. 왜 제목이 ‘맨’이 아닌 ‘멘’인지 곱씹을 시간이 충분하다.

영화 ‘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등 주로 SF 장르를 연출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이 15년 전부터 준비해 만든 영화다. 영국 배우 로리 키니어가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의 다양한 얼굴을 1인 9역 연기로 선보였다. 중세 영국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글로스터셔 코츠월드 지역에서 촬영했다. 올해 열린 제75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초청됐고,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13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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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bell@kukinews.com
이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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