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방학식이 열립니다. 다음주부터는 여름 방학 시작이죠. 아이들은 ‘와 방학이다’ 이러는데 양육자 입장에서는 그냥 ‘아이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나요”
여름 방학이 찾아왔다. 학부모 한숨은 깊어진다. 학교와 어린이집이 채워주던 돌봄의 시간을 어떻게든 채울 방도를 찾아야 해서다. 각종 학원을 등록해 아이를 ‘돌리고’, 운이 좋으면 연로한 조부모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로또에 당첨될 정도의 운이 따라준다면 공적 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의 방학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부모들과 돌봄전담사, 교수가 모여 돌봄 공백에 대응하는 서로의 방식을 공유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21일 오전 11시 참여연대 2층에서 ‘돌봄에는 방학이 없다-방학이 두려운 부모들’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돌봄 공공성 강화와 돌봄권 실현을 위한 시민연대가 주최한 자리다.
가기 싫다는데…손 잡아끌고 데려가는 태권도 학원
이날 라운드테이블에는 학부모 2명이 참석했다. 워킹맘 김은정씨의 자녀는 초등학교 3학년이다. 김씨는 아이가 4살 때부터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면서 도움을 받는다. 80대 고령인 부모님에게 지워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사교육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교 후 2~6시까지 태권도, 미술, 피아노, 수영, 영어 학원을 ‘테트리스’처럼 끼워 아이의 일상이 유지된다. 방학에는 태권도학원에서 여는 운동 특강 프로그램을 이용할 계획이다.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공동대표는 초등학교 1학년, 3학년인 자녀 둘을 키운다. 박 대표는 “정말 운이 좋아서”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적돌봄서비스 ‘우리동네 키움센터’에 자녀를 보낼 수 있었다. 박 대표 자녀들은 하교 후에는 먼저 우리동네키움센터에서 돌봄을 받은 뒤, 결국에는 학원으로 향한다. 종종 조부모 도움도 받는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도 부모님 도움이 없었다면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방과후 사교육, 학교 돌봄, 조부모 도움 등 할 수 있는 걸 모두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맞벌이 부모로서 부모가 부재한 시간에, 필요한 만큼, 아이가 지낼 수 있는 공적 서비스를 찾기 어려웠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기 가장 먼저 문을 닫은 곳은 학교, 가장 나중에 닫은 곳은 학원이다. 자연스럽게 태권도 학원부터 시작했다”며 “지금은 급여 3분의 1을 사교육에 쏟아붓는다. 허리가 휜다”고 했다.
박 대표는 “태권도장을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픽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부모가 데려다주지 않아도 되고 데리고 오지 않아도 된다”면서 “아이가 혼자 왔다 갔다 하지 않게 동행을 해주는 누군가가 정말 절실하다. 그래서 아이가 태권도 가기 싫어해도 양육자들은 ‘한 번만 해보자’고 설득까지 해서 데려간다”고 부연했다.
돌봄교실 운영 학교장 재량…교원단체 따가운 시선도
공적 돌봄의 미흡한 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박 대표는 초등학교 긴급돌봄을 이용했었다. 하지만 학교장 마음대로, 아이들이 있고 싶어 하는 공간도 아닌 곳에서 꾸역꾸역 돌봄이 이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가 긴급돌봄에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리던 날, 결국 사교육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제공하는 돌봄서비스 중 이용자가 가장 많은 돌봄교실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정현미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초등돌봄전담사 전국분과장은 “전국 돌봄전담사 처우가 지역,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준비시간, 마무리하는 시간은 제외한 채 딱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만 근로시간으로 쳐주는 탓에 대부분 초단시간 근무에 최저임금만 받으며 일한다”고 말했다.
또 정 전국분과장은 “돌봄은 365일 필요하다. 하지만 학교장 재량이 크다보니 수요조사까지 다 마쳐놓고 방학에 돌봄교실을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아이들 점심까지 챙기기 부담스러워 점심 전까지만 운영을 하는 학교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보육기관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교원단체들의 따가운 시선도 돌봄전담사를 힘들게 한다고 했다. 학교는 돌봄교실 운영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싶어하지만, 지자체도 이를 부담스러워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공적 돌봄서비스가 세 잎 클로버 되었으면”
이날 참여한 패널들은 공적 돌봄서비스의 양적 확대보다도 질적 확대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박 대표는 “방학이 시작되면 취업모(母)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식사, 그중에서도 중식이다. 아침에 카드 하나 놓고 나오거나, 1만~2만원 두고 나오기도 하고, 배달앱으로 대신 시켜주는 등 다들 고군분투한다”고 했다. 이어 공적 돌봄서비스에서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먹는 게 빠진 돌봄을 돌봄이라고 할 수 있나”고 반문했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급자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의 공적 돌봄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면서 “돌봄 전담사 처우도 개선돼야 한다. 교육은 교육대로, 돌봄은 돌봄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돌봄전담사와 교육을 책임지는 교사 사이 갈등이 해소될 수 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끝으로 부모들은 조건 없는, 모든 아이를 위한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공적 돌봄서비스는 부모들에게 만나면 행운인 네 잎 클로버 같은 존재”라며 “정부의 역할은 네 잎 클로버를 주변에 흔한 세 잎 클로버로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지역아동센터도 그렇고 공적 돌봄 서비스 이용 가능한 양육자는 조손가정, 맞벌이 등으로 극히 제한돼있다”면서 “부모가 일하지 않고 있다고 해서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모든 아이를 위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