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에 걸친 타당성 조사와 시민의 찬성 여론에 어렵게 첫발을 뗀 제2대구의료원 건립이 백지화될 위기다.
22일 대구시의회에 따르면 이재숙 시의원(문화복지위원회, 동구4)은 제294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제2대구의료원 건립 재추진을 촉구했다.
이 시의원은 “제2대구의료원 건립은 시민 다수의 요구였으며, 정치권에서도 합의된 사항이었다”면서 “3년이 넘도록 끝날 줄 모르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감염병 사태를 계기로 공공의료 확충에 관한 관심과 요구가 어느 때보다 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에는 공공의료의 경우, 대구의료원만 설치돼있고 대구 동북권(중구, 동구, 북구, 수성구)의 책임 의료기관은 지정되지 않은 상태다. 또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감염병 위기 대응 차원의 공공병원을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3월 권영진 전 대구시장은 제2대구의료원 설립 추진을 공식 발표했지만 새 시장 취임 후 상황은 달라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제2대구의료원 설립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다.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도 홍 시장은 공공의료원 추가 설립은 없다고 못 박았다.
홍 시장은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전부 공공의료다. 의료민영화가 없다”면서 “일부 강성노조에서 제2대구의료원을 요구하는데 부화뇌동해서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기존 대구의료원에 격리병동을 68병상 확충하고, 전문의료진도 확보해 감염병 대응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홍 시장의 ‘대한민국 의료체계는 전부 공공의료’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지난 5월 발간한 ‘2021년 공공보건의료통계집’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공공의료기관은 총 230개소다. 한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중 공공 비중은 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는 총 6만3417개다. 한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전체 병상 중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9.7%. 이 역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OECD 평균은 71.5%다. 시민단체에서는 공공의료가 이미 고사 직전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대구는 코로나19 초기에 큰 피해를 입었다. 지난 2020년 초 대구에서는 4200여명의 확진자가 나온 신천지교회발 집단감염 사태를 시작으로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대구·경북(TK) 봉쇄조치’ 발언까지 나와 논란이 됐다. 당시 민간병원이 제대로 나서지 않아 10%밖에 안 되는 공공병상이 코로나19 확진자 80%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입원하지 못하고 사망한 환자들이 잇따랐다는 게 시민단체 입장이다.
지난 2020년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숨진 고교생 고(故) 정유엽군(당시 17세) 아버지 정성재(55)씨도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질병 위기 시에 나타날 수 있는 의료 공백을 볼 수 있었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이 공공의료 강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의료 상황 인식과 공감 능력에 대해 부족함과 무지의 극치를 보여준 홍 당선인의 행태에 큰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제2 대구의료원을 무효화시키려는 상식 밖의 행동을 멈춰달라”고 발언했다.
일부 강성노조가 제2대구의료원을 요구한다는 홍 시장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멀다. 제 2대구의료원 설립은 전임 시장이 약속한 사항이다. 권 전 시장은 지난 3월 “제2 대구의료원 설립을 위한 타당성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제2 대구의료원 설립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대구시는 용역수행기관과 지역의료계, 공공의료전문가, 시민단체, 시의회 등 19명의 자문단과 함께 제2 대구의료원 설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 용역을 8개월간 벌인 끝에 약 400~500병상 규모로 대구 동북권에 제2 대구의료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민 찬성 여론도 절반을 넘었다. 지난해 대구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7.7%가 제2 대구의료원 건립을 찬성했다. 또 87.6%가 건립시 이용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 이를 토대로 대구시는 오는 2025년 착공 후 2027년 완공한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시민단체 무상의료운동본부는 성명을 내 “대구는 코로나19 비극을 가장 먼저 겪은 도시이고 원인은 공공병원 부족 때문이었다”면서 “대구는 무려 4만여개의 병상을 가진 도시인데도 공공병원은 거의 없고 민간병원은 돈 안 되는 코로나19 환자를 기피했다. 코로나19 환자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도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이 되면서 쫓겨나 목숨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시민 압도적 찬성 여론으로 제2대구의료원 설립이 공식화됐다”며 “홍 시장이 이를 뒤집는다면 시민 의지를 거스르는 일일 뿐 아니라 말 그대로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할 결정이 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대구의료원 강화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동안 밀린 숙제를 안했던 걸 지금에야 하는 것 뿐”이라며 “기존 의료원 강화는 물론이고 제2, 제3대구의료원을 지어도 대구 내 공공의료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백지화하겠다는 단정적인 표현은 쓰지 않았다. 그러나 기존 대구의료원 강화에만 집중하겠다는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다”면서 “임기 내 추진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의회를 상대로 목소리 낼 것을 요구하거나, 주민투표 등 여러 방법으로 제2대구의료원 설립을 촉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