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뉴스] 차 사고 내고, 여승 성폭행하고도 승승장구 친일파 박중양

[근대뉴스] 차 사고 내고, 여승 성폭행하고도 승승장구 친일파 박중양

[현대문으로 읽는 근대뉴스] 골수 친일파 박중양의 처세...정무총감 만나러 광란의 질주

기사승인 2022-08-01 10:08:22

1924년 4월 4일

충북도지사 박중양은 정무총감 행차를 환송하려고 어떻게나 무섭게 자동차를 몰았던지 인민 한 명을 치어 생명이 위독하게 되었는데 지사 각하는 1원의 위로금을 하사하셨다고 한다.

만약 총독이라도 영접하자면 20~30명은 가뿐히 차로 치고 하사금을 1원씩 나눠주시려나. (동아일보 ‘횡설수설’ 코너)

해방 후 반민특위 출석을 위해 출두한 박중양. 이토 히로부미의 총애를 받았다. 
[해설] 충북지사 박중양(1872~1959·중추원 부의장)이 충북도를 순방한 정무총감 출영에 급하게 나가다 자동차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정무총감은 조선총독 바로 아래 실권자로 미즈노 렌타로였다. 정무총감은 군사통수권을 제외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실세가 떴으니 뼛속까지 친일파였던 박중양이 차를 전 속력으로 몰아 미즈노 렌타로 출영에 나선 것. 박중양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다녀와 유창한 일본어로 승승장구하더니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거쳐 황해도 충북도 지사를 지냈고, 해방 직전(1945년 4월)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까지 됐다. 1925년 속리산 여승을 성폭행한 것이 언론에 알려졌는데도 출세가도였다. 여승은 승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기소됐으나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이완용을 변호하고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존경심을 공공연히 드러냈고 함태영 이시영 이승만 등 독립운동가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절 대구군수를 지내면서 탐학을 일삼기도 했다. 호의호식하고 장수한 대표적 친일파로 꼽힌다.

그가 사고를 내고 소위 하사금(?)이라 전한 1원은 밥 몇 끼 사먹으면 끝날 돈이었다. 이광수의 소설 ‘무명’에 보면 형무소 병감(病監)에 차입 받은 한 인물이 3원을 받았는데 일용품 사고 밥 몇 끼 사먹으면 다 써버리게 되는 적은 돈으로 묘사된다.

전정희 편집위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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