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해라, 술 먹지 마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
병원 가면 듣는 단골 멘트다. 정말이지 스트레스 없이 살고 싶다. 세상은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전쟁 같은 하루가 끝나면 운동할 체력이 없다. 가끔 친구와 마시는 소주 한 잔도 없다면 무슨 낙으로 살까. ‘하나 마나 한 소리 아니야?’ 흰 가운을 입고 책상 너머 앉은 의사가 괜히 원망스럽다.
의사는 과연 저 수칙을 지킬까.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게 가능할까. △김상현 순천향대 부속 서울병원 고도비만수술센터장 △노재성 아주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박중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한병덕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4인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주세요. 달리 할 말이 없어서 하는 말 아닌가요”
김 센터장: 정말 아닙니다. 의학적으로 꼭 필요해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특히 비만 환자를 많이 보는데요, 좋은 식사 습관과 운동 생활화가 필요하다고 매번 강조합니다. 비만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죠.
노 교수: 건전하게 생활하는 게 건강에 중요하거든요. 어려운 일이죠.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운동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긴장을 완화시켜줘요. 술은 그 자체가 ‘독’이죠. 술만큼 잘 알려져 있는 발암, 치매 유발 물질이 없어요. 잠이 안 와서 술 먹고 잔다는 분들이 있는데요. 위험한 행동입니다. 차라리 잠이 잘 오게 하는 약을 드세요. 술이 약보다 훨씬 더 위험해요.
“의사들은 대부분 3가지 수칙 잘 지키나요”
박 교수: 전혀요. 건강 지식은 습관과 무관합니다. 안다고 해서 그대로 지키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의사 중에도 비만에, 흡연하고, 과음하는 사람 많습니다. 건강한 생활 습관은 지식이 아닌 성숙한 인격과 연관이 깊습니다.
김 센터장: 하하. 그럴리가요. 의사도 사람인걸요. 특히 저는 외과 의사라 긴급하고 중요한 수술을 할 때 스트레스를 굉장히 받아요. 술은 종종 마시고 있습니다. 의사들끼리 학회, 연구 모임이 자주 있어요. 짠도 하고 건배 제의도 하다 보면 술을 안 걸칠 수 없어요. 운동은….(잠시 침묵) 요새 피곤해서 잘 못합니다.
“스트레스 안 받고 사는 게 가능한가요”
노 교수: 병원에서 말하는 ‘스트레스 받지 마라’의 정확한 의미는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 노출되는 걸 줄이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전날 밤 술을 많이 먹고 다음 날 ‘빵꾸’ 냈다고 칩시다. 이후 업무에 지장을 줄 거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죠. 내 벌이에 맞지 않는 과소비도 마찬가지고요.
한 교수: ‘스트레스 받지 마라’는 말이 사실 좀 무책임하죠.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고 살겠어요. 전 차라리 스트레스 빨리 풀 방법을 궁리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웹툰을 보는 등 소소한 즐길 거리를 매일 찾고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힘들 때는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슬퍼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박 교수: 생명을 가진 존재는 모두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 스트레스를 건강한 삶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이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는 대개 현재의 나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계기가 됩니다. 스트레스를 회피하지 않고 발전의 기회로 삼은 사람이 건강한 삶을 삽니다.
“스트레스는 정말 만병의 근원인가요”
한 교수: 스트레스는 위장 기능을 떨어트리고 자율신경계 균형을 깨트립니다. 폭식, 과음 등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의 주요 원인입니다.
박 교수: 그렇지는 않습니다.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불안과 용기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 그 태도가 삶의 행복과 건강을 결정합니다.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성숙해지고, 삶의 행복을 더 깊이 누릴 수 있습니다.
노 교수: 많은 점에서 그렇게 알려져 있죠. 스트레스가 암과 우울증을 악화시키고 고혈압, 심장병에도 영향을 준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에는 좋은 스트레스와 나쁜 스트레스가 있어요. 우리가 처음 학교에 갔던 날을 생각해 보세요. 스트레스 받지만 동시에 설레는 일이기도 하죠.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기쁨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의사는 밀가루와 기름지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 안 먹나요. 그럼 무얼 먹나요”
한 교수: 의사들도 다 먹어요 ^^. 다만 의식적으로 튀김류, 자극적인 음식, 탄 음식은 피하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정제 탄수화물(면, 빵, 떡)보다 통곡식 밥을 즐깁니다. 가공육은 절대 먹지 않습니다. 탄산음료를 비롯해 모든 종류의 단맛이 나는 음료는 마시지 않습니다.
김 센터장: 저는 특히 기름진 음식과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거든요. 먹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 피하기 쉽지 않아요. 절대 안 먹는 음식은 위암 발생률을 높이는 탄 음식 정도입니다. 대신 평소 혼자 먹을 때는 탄수화물 비중을 줄이고 단백질, 지방을 골고루 섭취하려 합니다.
박 교수: 현대 의학과 전통 의학을 아우르는 오래된 진리가 있습니다. 소식다동, 즉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라는 말입니다. 고칼로리 음식, 설탕·밀가루와 같은 당화지수가 높은 음식, 조미료와 염분이 가득한 자극적 음식 모두 건강을 망가뜨립니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필요 이상의 음식과 자극을 스스로 삼갈 수 있어야 합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한 교수: 체중 관리를 신경씁니다. 우리 나이에 체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지방이 붙는다는 뜻이거든요. 일상 속에서 많이 움직이려 해요. 대중 교통과 계단을 애용합니다. 영양제 챙겨 먹고, 가끔 수액주사도 맞고요. 그리고 수면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박 교수: 저는 술은 적당히 마시고 담배를 피지 않습니다. 한 달에 절반 이상은 3km 달리기를 꾸준히 하고요. 엘리베이터보다 계단으로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식사할 때는 밥은 반 공기만, 대신 반찬은 다 먹습니다. 특히 나물, 야채, 두부, 콩 반찬을 좋아합니다. 잠은 가급적 6시간 이상 자려고 노력합니다. 잠은 몇 시에 자는지보다 몇 시간을 자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랬구나. 의사도 사람이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별개다. 스트레스는 인생의 동반자다. 용기 내 마주하자. 너무 힘들 때는 주변에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자. 가장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