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품은 이야기들 [‘우영우’ 종영②]

‘우영우’가 품은 이야기들 [‘우영우’ 종영②]

기사승인 2022-08-17 06:00:09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스틸컷.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자폐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온갖 민감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존 드라마에서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흔치 않은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서도 활발한 담론을 이끌어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변호사 우영우의 이상하고 비범한 성장기도 눈에 띈다. 다소 엉뚱해 보여도, 우영우는 기발한 사고로 인식을 전환하며 난관을 헤쳐간다. 처음엔 이상했던 주인공은, 여러 사건을 거치며 비범한 존재로 와닿는다. 우리 사회는 이상향을 찾아가는 우영우를, 드라마가 던진 수많은 담론을 어떻게 봐야 할까. 그동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다룬 이야기들을 인상적인 장면을 중심으로 돌아봤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송화면 캡처

80년 전엔 살 가치가 없었던 사람들 (3회)

자폐인이 피의자로 몰린 사건을 맡은 우영우(박은빈). 자신만의 해법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검사는 우영우가 자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심신미약자로 몰고, 의뢰인은 사건 당시 정황을 추리한 우영우에게 “그래 봤자 너도 자폐잖아”라고 일갈한다. 우영우는 인터넷 기사를 보며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보나 마나 심신미약 핑계 대며 무죄 때림’, ‘이래서 격리시켜야 하는 거임’, ‘자폐라고 봐주지 맙시다’ 등 날이 바짝 선 댓글을 보며 착잡해한다. 내레이션으로 우영우는 이렇게 말한다. “80년 전만 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었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 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 명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라는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자폐인이 짊어진 장애의 무게를 현실적으로 다룬 이 에피소드는 방영 이후 자폐인 인식 개선에 대한 담론을 일으켰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송화면 캡처

승소하고 부끄러워하는 변호사 (5회)

우영우는 다른 드라마 속 변호사와 다르다. 거악에 맞서는 법정물 속 히어로가 아닌, 현실적인 사건들을 다루는 변호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변호사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의뢰인 편에 서서 이기기만 하면 되는, 돈과 성공만 좇는 변호사와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변호사. 두 가지를 두고 어느 쪽이 옳은 길인지를 되묻는다. 우영우가 택한 건 후자다. 이화 ATM과 금강 ATM의 판매 금지 가처분 소송을 맡은 우영우는 승소를 위해 진실 대신 실리를 추구하고, “부끄럽다”며 후회한다. 정의구현을 위해 진실을 추구하던 여타 법정 드라마와 달리, 변호사로서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되새긴 에피소드로 평가받았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송화면 캡처

의뢰인의 사상을 존중하는 변호사 (9회)

‘어린이다움’에 대해 이야기한 회차다. 자신을 어린이 해방군 총사령관이라고 소개한 방구뽕(구교환)은 ‘어린이는 지금 당장 놀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초등학생들이 타고 있던 학원버스를 갈취해 근처 야산으로 데려가 실컷 놀게 한다. 미성년자 약취 유인 혐의로 체포된 그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해방을 위해서”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우영우는 방구뽕의 행위를 변호하지 않고 그의 사상을 두둔한다. 드라마는 아이들의 입을 통해 ‘어린이는 지금 당장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직접 전한다. 방구뽕 에피소드를 두고 “어른들의 교육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현실을 대변해서 좋았다”, “지나친 사교육을 막기 위해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취지는 좋았으나 전달 방식이 범죄였던 건 부적절했다”, “모방범죄가 일어날까 겁난다”는 지적이 오갔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송화면 캡처

지적 장애인이 누군가를 사랑할 권리 (10회)

지적장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다룬 회차다. 지적장애인의 준강간 피해 사건을 다뤘다. 우영우는 비장애인 남성이 지적장애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형사소송을 맡는다. 남성은 여성에게 데이트 비용을 전가하는 등 그를 이용한 행적을 보였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항변한다. 여성 역시 그와 사랑하는 사이라며 처벌을 원치 않는다. 우영우는 “장애인한테도 나쁜 남자와 사랑에 빠질 자유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신 장애로 인해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다”며 남성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여성은 오열한다. 그와 별개로, 장애인 우영우는 비장애인 이준호(강태오)와 연애 감정을 싹 틔운다. 방송 이후 시청자 사이에선 “장애인의 사랑을 타인이 정의할 수 있는 건가”를 두고 열띤 토론이 오갔다. 해당 에피소드의 원작자인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대표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엄단의 이면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장애인들의 주체성, 자기 결정권을 이해하려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송화면 캡처

변호사에게 승소보다 더 중요한 것 (12회)

우영우가 변호사로서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한 회차다. 우영우는 미르생명 희망퇴직 권고 사건을 맡아 류재숙(이봉련) 변호사와 인연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우영우는 과거 한바다가 미르생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앞서 법률 자문을 했다는 걸 알고 반발한다. 사회 정의를 두고 고민하는 우영우에게 그의 멘토 정명석(강기영)은 “변호사는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류재숙은 “변호사는 한 인간으로서 의뢰인을 지지하는 일”이라고 한다. 에피소드 말미에는 재판에서 지더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류재숙과 승소하고도 살해 위협과 건강 이상에 힘겨워하는 정명석의 모습이 번갈아 나온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변호사가 걸어야 할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설파한다. 류재숙은 권민우(주종혁)가 보낸, 사건의 성패를 가릴 수 있는 의견서도 쓰지 않는다. 우영우가 난처해질까 우려해서다. 권모술수도 넘어설 수 없는 그의 선한 의지는 승소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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