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놉’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 아버지 뒤를 이어 가족 목장을 운영하는 OJ 헤이우드(다니엘 칼루야) 이야기다. OJ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여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케케 파머)와 함께 훈련된 말을 영화나 TV 제작에 출연시킨다. 하지만 일이 좀처럼 풀리지 않던 중 어느 날 하늘에서 이상한 뭔가를 목격한다. 그것의 정체에 점점 다가가는 이들에게 생각지 못한 위험이 찾아온다.
‘놉’을 보기 전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과 다른 영화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조던 필 감독은 ‘놉’으로 자신 만의 장르 문법을 새로 쓴다. 공포와 SF, 휴먼 드라마 등 익숙한 장르의 매력을 완전히 새로 조합한 이야기로 들려준다. 1시간 가까이 지날 때까지 영화가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어디로 흘러가는 영화인지 알기 어렵다. 새로움을 과시하지 않고 완결된 이야기로 매듭 짓는 후반부가 마법처럼 황홀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별 다른 설명 없이 이야기로 꿰뚫는다.
언뜻 공포 영화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소재와 설정들이 다수 등장한다. 주인공 남매는 외딴 곳에서 다른 이들과 별다른 교류 없이, 갈등이나 욕망 없이 평화롭게 산다. 말을 훈련하는 주인공의 직업이나 영화, TV 업계와 연관된 이야기도 공포 장르와 연결하기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귀신이나 살인마는 당연히 없다. 엉뚱한 재료들로 무서운 공포 영화, 스릴 있는 모험 성장 영화로 엮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영화가 끝나면 그동안 등장한 이야기와 상징들을 곱씹게 한다. 감독이 영화에 숨겨둔 메시지가 한 둘이 아니다. 되도록 사전 정보나 스포일러 없이 봐야 할 영화다.
영화 안에 관객 자리를 마련한 것처럼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낯선 이야기, 대단한 세계를 자랑하며 관객과 멀어지는 대신 함께 울고 웃으며 호흡할 수 있다.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고, 인물에 대한 믿음과 배신감 등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상황들을 관객과 똑같은 타이밍에 호흡한다. 방 안에서 홀로 OTT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다른 경험이다. 영화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걸 담아낼 수 있는 매체인지 온전히 느끼게 하는 영화다.
조던 필 감독의 데뷔작 ‘겟 아웃’에 출연한 배우 다니엘 칼루야가 OJ 역을 맡아 맨 앞에서 영화를 이끈다.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등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를 함께한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은 맨 뒤에서 모든 걸 묵묵히 담아낸다. 지난달 북미에서 먼저 개봉해 박스오피스에서 1위를 차지하며 북미 1억700만 달러 수익을 거뒀다.
1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