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분야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의료계, 정부, 국회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19일 국회에서 ‘필수의료분야 의사부족,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란 주제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관련 긴급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춘숙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호와돌봄을바꾸는시민행동 등이 참석했다.
다만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측은 불참했다. 의협과 병협은 의사 수 증원 보다 필수의료분야 전문의가 부족한 탓이라며 현실적인 진료여건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서울아산병원, 개도술 전문의 2명 뿐… “의사 수 늘려야”
지난달 24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긴급수술을 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긴급 이송했지만 결국 숨졌다.
서울아산병원은 의료기관평가인증을 통과하고 ‘9차 급성기 뇌졸중 적정성 평가’에서 1등급을 받을 만큼 국내 최고의 상급종합병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해당 간호사에게 필요한 수술인 ‘뇌동맥류 결찰술’을 집도할 의사는 2명 뿐이었다.
다만 이는 특정 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소위 빅5 병원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빅5 병원에서 클리핑 개두술이 가능한 의사는 서울아산병원 2명을 비롯해 △세브란스병원 4명 △서울성모병원 4명 △삼성서울병원 4명 △서울대병원 3명 뿐이었다. 전국적으로도 146명에 불과하다.
빅5라 불리는 병원에서조차 뇌동맥류 파열에 따른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골든타임 내 대처가 어려운 실정이다.
임준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는 “응급의료체계 문제를 포함한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며 “필수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모두 인식하고 있지만 근본 원인과 해법은 천차만별”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직역별로 의사 공급 부족, 저수가에 따른 중증의료분야 기피, 수련을 포함한 인력 양성 관리에 공적 규제 부재 등 원인으로 꼽는 문제가 다양했다.
임 교수는 중단기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진료지원인력(PA)제도 활성화 등 대체인력 확충 및 은퇴한 대학병원 의사인력 활용 △급성기병상 수 조정을 통한 공급 확대 △일차의료전문의 수련과정 신설 △공공임상교수제도 도입 △정책수가를 통한 필수중증의료분야 지원 △공동수련제도 도입 △정책수가 등 통한 필수의료중증의료 인력 지원 △분야별 전문의 인력 조정 △필수의료 분야 표준진료지침 개발 △필수의료 성과 인센티브제도 도입 등을 언급했다.
다만 이는 인력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학교육의 질이 우수한 소규모 의대 정원 확대 △국립의대 정원 확대 △국립의전원을 통한 국가 필요 의사 인력 확충 △국립의전원을 통한 국가 필요 의사 인력 확충 △지역 공공의대를 통한 지역 필요 의사 인력 확충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0년 전부터 예견된 일… 국민만 보고 정책 추진해야”
전문가들은 ‘의사 정원 확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비극을 막기 위해선 해결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20년 전부터 예견된 일”이라며 “지난 10년간 의사 확충 요구가 있었지만 의사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국회와 정부가 사실상 방치하여 직무유기했다. 또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시행과정에서 의료계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객관적 검토 없이 의대 입학정원을 3500명에서 3058명으로 감축했다”고 지적했다.
남 국장은 “더는 국민의 헛된 죽음을 막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국민만 보고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면서 “의대 정원 증원과 공공의대 신설 등 의사 수 확충방안 없는 단기성 대책으로는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근본대책은 인력공급 확대방안이며 지체 없이 실행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문숙 대한간호협회 부회장은 “9차 급성기 뇌졸중 적정성 평가 1등급을 받은 서울아산병원도 이러한 상황인데 다른 곳은 부지기수로 일어날 것”이라며 “근본적 원인은 의사인력 부족이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사인력 확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의사인력 부족 문제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임을 인정하고, 이번 사건을 철저히 분석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사 눈치 보지 말고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면 정책 추진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 역시 “의사 수 증원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사인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의대 정원을 증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7년째 3058명에 묶여 있다”면서 “의사수 증원은 불법의료 근절과 파행진료 정상화, 열악한 근무조건 개선,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국민적 요구”라고 말했다.
의사 수 증원이 5년 이상 걸리는 장기적 대책임을 고려해 단기적 처방도 함께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연합회 회장은 “의사 수 증원과 함께 발등의 불을 끄는 방법도 있어야 한다. 당장 1~2년 내 효과를 보려면 직무범위를 재조정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임상교수제도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대책 마련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차전경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과장은 “정부도 이번 사태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 필수의료인력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단체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해결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필수의료인력 관련 문제는 수가, 정원, 수련, 교육 등 한가지 문제가 아니라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움직여야 해결이 가능하다”면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향후 마련할 대책에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