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농사, 농부가 때를 기다린다는 말을 아는 것

고구마 농사, 농부가 때를 기다린다는 말을 아는 것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 일기(3)
가뭄으로 늦춰지게 된 고구마 수확...'아이스 군고구마' 개발 온라인 판로 개척

기사승인 2022-08-22 09:07:58
올해는 예년에 비해 고구마 수확이 늦어지고 있다. 남쪽 지방의 경우 통상 7월 중순부터 캐기 시작해 8월 이후에는 쏟아져 나와야 하는데 8월 중순인 지금까지 아직 고구마를 캐지 않은 곳이 많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해 고구마가 크지 못해서 수확시기를 늦추고 있단다.

전북 익산 땅에서 수확한 햇고구마. 막 캐낸 고구마의 신선함이 살아 있다. 
사람들에게 꿀고구마로 알려진 ‘베니하루카’ 품종의 경우, 전북 익산은 8월 들어서야 캐기 시작했고 전남 영암과 전북 고창은 8월 20일 전후로 수확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예년에 비해 최소 열흘이상씩 수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가에서는 고구마를 캐면 소위 ‘큐어링’ 과정을 거쳐 고구마 전용 저장고에 저장한다. ‘큐어링’은 말 그대로 고구마가 상처 부위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온습도를 맞춰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마치 사람 몸의 상처 부위에 딱지가 앉는 것처럼 고구마의 흠집에 거무튀튀한 표막이 형성되고 그로인해 저장성이 좋아진다. 고구마 저장온도는 농가마다 조금씩 다른데 대략 10°c~15°c 사이로 맞춰준다.

고구마를 잘 아는 농사꾼들은 고구마 상태가 가장 좋은 시기는 11월부터 2월까지라고 한다. 11월 이전에는 맛이 덜 든 경우가 있고 3월 이후부터는 저장고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가급적 빨리 소비해야한다.

햇고구마로 '아이스 군고구마' 시제품을 만들 때 찍은 사진. 첫 시도는 실패했었다.
지난해부터 고구마를 오븐에 구워 냉동시킨 ‘아이스 군고구마’를 만들어 팔고 있다. 자체 개발한 ‘당화공정’을 적용해 고구마 고유의 풍미를 살리고 단 맛을 강화한 제품이다. ‘당화공정’은 고구마를 저온에서 스팀 가열하여 숙성시킨 후, 단계별로 온도를 높여가며 굽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고구마의 탄수화물이 엿당으로 바뀌어 고구마가 달달해진다. 주로 블로그나 SNS 운영자(인플루언서)를 통해 공동구매 형식으로 유통하고 있는데 판매량이 꾸준하고 소비자들의 평도 좋은 편이다.

한 가지 고민은 재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품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그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고구마 원물 상태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지난달까지는 작년에 수확해서 저장해 놓았던 고구마를 사서 물건을 만들었다.

첨가물을 넣지 않은 가공 군고구마. 좋은 원물을 구매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저장 고구마는 원물 자체가 충분히 숙성돼 단 맛이 강한데다가 ‘당화공정’으로 단 맛을 최대한 끌어 올렸기 때문에 간혹 다른 첨가물을 넣었다는 오해를 받았을 정도로 달달하다. 그러나 고구마 보관기간이 길어지면서 원물 상태가 점점 나빠져 제품 수율(완성품 대 투입 원물 비율)이 급격하게 떨어졌고 쓸 만한 원물을 구하는 데 도 애를 많이 먹었다. 일단 저장 고구마로 물건을 만드는 일은 지난달 말로 끝내고 지금은 햇고구마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주에 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북 익산에서 갓 수확한 햇고구마를 몇 박스 가지고 왔다. 숙성되지 않은 햇고구마는 전분이 많아 뻑뻑하고 단 맛이 거의 없다. 아무리 우리가 개발한 ‘당화공정’을 적용한다고 해도 단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작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단 맛이 약하고 식감도 좋지 않았다. 통상 한달 이상 걸리는 숙성기간을 1시간 내외의 공정으로 압축해보고자 했던 것인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

다행이 지난주에 가지고 온 햇고구마를 보관하면서 계속 상태를 보고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단 맛이 올라오고 있다. 고구마의 단 맛이 웬만큼 올라왔다 싶으면 다시 오븐에 넣고 구워볼 생각이다.

창고에 펼쳐 논 고구마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외관부터 지난주와 달라 보인다. 처음 가지고 왔을 때는 때글때글 한 것이 전혀 물렁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그 기세가 다소 누그러졌고 만져보니 촉감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난주에 바로 작업하지 말고 고구마 상태를 봐가며 조금 기다렸다가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밭에서 막 캐내 기운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놈을 다짜고짜 내 방식대로 길들이려 했으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고구마를 수확하는 농부들은 때를 기다릴 줄 안다. 나는 왜 기다리지 못했을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니버시티 오프 펜실베니아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laka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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