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시멀리스트와 미니멀리스트의 만남 같다. 한 편에선 온갖 사고를 치며 사건을 여러 번 꼬아놓는다. 반대편에선 신중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때로는 서로를 밀어내고, 때로는 서로를 끌어당긴다. 정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두 가지 힘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 결국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지켜보는 즐거움이 낯설고 짜릿하다.
‘불릿 트레인’(감독 데이빗 레이치)은 돈가방을 둘러싸고 일본 초고속 열차 신칸센에 모이는 킬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운 없기로 유명한 킬러 레이디버그(브래드 피트)는 물건을 전달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미션을 받고 열차에 오른다. 돈 가방을 찾는 건 쉬웠지만, 열차에서 자꾸 이상한 일에 휘말리며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불릿 트레인’을 기존 할리우드 액션영화와 다르게 하는 건 이사카 코타로가 쓴 원작 소설 ‘마리아 비틀’의 힘이다. 스턴트 배우 출신인 데이빗 레이치 감독이 연출한 전작 ‘데드풀2’의 가벼운 B급 감성과 ‘존 윅’의 화려한 액션이 적절히 섞였다. 탄탄한 원작 서사가 기틀을 잡아주는 덕분에 코미디와 액션이 자유롭게 날뛰어도 안정감이 생긴다. 어수선하고 난잡하게 흩날리는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으로 전개하는 원작의 매력이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더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결말에 이르면 한 편의 마술쇼를 감상한 기분마저 든다.
일본과 신칸센을 배경으로 해서 얻는 장단점이 뚜렷하다. 일본과 열차 안을 낯설고 이국적인 이미지로 표현해 시각적인 쾌감을 준다. 스크린을 수놓는 독특한 색감의 이미지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처럼 보인다. 미국을 벗어난 덕분에 상상력을 보다 과감하게 펼쳐낸다. 인물들의 예측 못 할 행동과 톡톡 튀는 캐릭터가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다만 일본과 미국의 정서가 뒤섞여 한국 관객들이 자리 잡을 틈을 주지 않는다. 남의 잔치를 왜 구경하는지 영화는 설득하지 않는다.
영화 ‘옥자’, ‘미나리’ 등 제작자로 활약 중인 브래드 피트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이후 오랜만에 배우로 출연했다. 영화의 원작인 ‘마리아 비틀’은 2022년 영국 대표 추리문학상인 대거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북미에선 지난 5일(현지시간) 개봉해 누적 5448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오는 24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