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의사와 간호사간 힘겨루기가 다시 시작됐다. 대한의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는 국회에 간호법 폐기를 요구했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간호법은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악법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며 즉각 반박했다.
간호사 업무범위·처우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 제정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이제 법사위와 본회의 의결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방사선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직역단체들은 23일 오전 11시 간호법 저지 보건의료연대 출범식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진행했다. 이들은 “간호법은 간호사 이익만을 위해 다른 보건의료직역 업무를 침탈하고 보건 의료계 혼란만 가중할 뿐”이라며 “국회는 간호법 심의를 즉각 중단하고 간호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보건의료연대는 간호법이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간호조무사 등 다른 보건의료직역의 업무를 과도하게 침해하고 이로 인한 갈등이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선언문을 통해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 명분으로 초고령 시대 간호의 역할 증가를 명분으로 내세운다”면서 “하지만 진짜 속셈은 다른 보건의료직역 업무영역을 침탈해 간호사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간호협회가 아무리 발톱을 숨긴다 한들 다른 보건의료직역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간호협회 속셈을 모를 리 있겠는가”라며 “국회는 간호법 심의를 중단하고 즉각 간호법을 폐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400만명의 각 단체 회원들이 참여하는 보건의료연대 총궐기대회를 포함해 강력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간호법 제정이 아닌 보건의료직역간 업무와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고, 초고령 시대를 대비해 바람직한 보건의료체계 구축, 전체 보건의료인력 처우 개선, 저수가를 적정수가로 바꾸는 등 대안을 국회에 제안했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우리 보건의료 13개 단체가 간호사 처우 개선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간호협회는 간호법은 곧 간호사 처우 개선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국민과 언론을 호도한다”면서 “간호법만이 간호사 처우 개선 해답이라면 의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등 타보건의료 직역 처우 개선을 위해 각 직역을 위한 별도 법안이 모두 제정돼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김건남 응급구조사협회 부회장은 “지금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태움으로 힘들어하며 많은 간호사가 병원을 떠난다”며 “이들을 위로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기존 의료법 테두리 안에서, 보건의료 인력지원법을 통해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는 반박 입장을 내놨다. 보건의료·시민사회·소비자단체 등 986개 단체가 참여한 간호법제정추진범국민운동본부는 긴급 규탄 성명을 내 “간호법 내 간호사 업무범위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로 의사의 지도, 감독을 벗어나 독자적 진료를 할 수 없다”며 “간호사의 독자적 의료행위는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또 “현 의료기관에서 각 면허 자격 간 업무가 명확하게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의료기관 경영자가 이윤추구를 위해 업무상 위력 관계에 놓여있는 간호사 등 종사자에게 불법적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타 보건 의료 직역의 업무침해 원인은 간호법과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그간 논란이 일었던 간호사의 업무 범위 등 일부가 수정 반영된 조정안이 통과됐다. 조정안에는 △간호법 우선 적용 규정 삭제 △간호사 업무 범위를 ‘진료의 보조’로 조정 △요양보호사·조산사 내용 삭제 등이 담겼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