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숨진 이후 한 달이 지났다.
보건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응급수술 발생에 대비한 진료‧전원‧이송체계를 자체 점검하라고 행정지도했다. 하지만 구속력 없는 행정지도로는 병원이 대책을 마련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근본 원인 두고 의견 ‘분분’…정부, 필수의료 확충 추진단 발족
지난달 24일 새벽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병원에 개두술을 할 의사가 없었다. 간호사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이번 사건 원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시민단체와 간호계에서는 “의사 인력 부족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에서는 열악한 근무 환경과 기형적인 수가 구조 때문에 필수의료, 이른바 바이털(vital) 과로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방재승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지난 22일 국제학술지인 JKMS에 사설을 기고해 뇌혈관외과 의사가 부족한 원인은 뇌수술을 하면 할수록 수익이 감소하는 현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저수가 구조를 한국 의료의 가장 큰 문제로 꼽으며 “한국의 의료 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아주 낮은 수준이다. 의료수가의 상대적 가격 수준을 미국을 100이라고 하면 OECD 평균은 72, 일본은 71, 한국은 48”이라며 “뇌혈관외과 쪽 수가는 더욱 처참해서 일본 뇌혈관외과 수술 수가의 1/4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번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 저수가 문제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정부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고위험수술에 대한 수가를 올리겠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발족한 ‘필수의료 확충 추진단’은 지난 25일 첫 회의를 갖고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해 뇌동맥류 개두술 등 고위험, 고난도 수술과 응급수술 수가를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정책수가란 공공의료 기능을 담당하는 곳에 별도 수가를 매겨 보상을 강화하는 제도다.
복지부 보고서 “수술 의사 부재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
복지부는 아산병원에 대해 진상조사를 실시한 결과 법적인 문제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9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서울아산병원 현장확인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부는 “의료법 위반 사항은 없었지만 수술 의사 부재가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었으며 당시 개두술 교수 2명 모두 휴가 중이었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에는 개두술(클립수술) 2명, 중재술(코일색전술) 1명, 중환자실 담당 2명 등 신경외과 뇌혈관 교수 5명과 전문의 3명이 근무하고 있다. 사건 당시 개두술이 가능한 교수 2명 모두 휴가 중이었다. 그리고 당직 근무 의료진은 뇌혈관 교수(중재술) 1명, 중환자실 교수 1명과 당직 명단에 따른 전공의가 전부였다.
복지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복지부는 후속 조치 성격으로 지난 9일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협의회에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복지부는 이들 병원에 응급 수술 발생에 대비한 진료·전원·이송체계 자체 점검을 주문했다. 또 서울아산병원에는 당직, 휴가 관련 근무 운영 규정 개선, 효율적 전원체계 마련 등을 내부 점검해달라고 요구했다.
행정지도 실효성에 의문…“복지부 의지 없는 것 아닌가” 지적도
그러나 행정지도는 강제성이 없다. 자체 점검, 규정 개선을 언제까지 완료해야 한다는 시한도 없고 따로 복지부에 보고할 필요도 없다.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주어지는 불이익도 없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복지부 행정지도 이후 전원체계나 근무 운영 규정에 변화가 있냐는 질문에 “변경 및 개선을 위해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서울 내 한 상급종합병원 의사는 “행정지도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자체점검을 실시한다는 내부 공지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어 “연휴나 휴가철에 각 병원에서 스케쥴을 잘 짜서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할 필요가 분명히 있지만 내부 자체 점검으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혜선 가톨릭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필수의료과목에 의사가 가지 않는 문제는 의료수가를 보전할 수 있도록 입법과정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병원에서 알아서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 행정지도가 낫다. 하지만 복지부가 의지만 있다면 의료기관 인증평가 항목에 진료‧전원‧이송체계 유무를 포함시키는 등 얼마든지 구속력을 가지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미라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강제성이 없다는 점은 행정지도의 한계”라면서 “제5기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2024~2026년)은 이미 확정됐기 때문에 반영이 어렵다. 다만 만약 응급환자 이송체계에 대한 중요도나 시급도가 더 커진다면 의료기관 인증평가 항목에 포함하도록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