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의사 구하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지시로 채용방식을 바꾸고 연봉을 대폭 인상했지만 쉽지 않다.
시는 소방재난본부, 시립병원, 보건소에서 일할 의사를 뽑는 하반기 정기 채용을 진행했지만 결국 당초 필요한 인원에 크게 미달한 채 서류전형을 마감했다. 시 관계자는 14일 “정원 확보가 안 된 기관들은 이번 통합 공고와는 별개로 개별 채용을 통해 인원을 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는 지난 8일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했다. 금천구보건소와 중구보건소에 각각 서류전형 합격자가 1명, 3명이다. 오는 21일 면접시험을 거쳐 각 1명씩 뽑히게 된다.
앞서 시는 8개 기관 14개 분야 공공의사 20명을 모집하는 하반기 정기채용 공고를 냈다. 지난달 1~3일 1차 접수를 받았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이에 지난달 23~25일 재공고를 냈다.
소방재난본부, 서북병원 등 다른 12개 분야에는 지원자가 전무했다. 시 인재개발원 관계자는 “지원자가 있는데 합격자가 없으면 ‘합격자가 없다’고 명시한다”면서 “아예 언급조차 없다는 건 금천구 보건소와 중구 보건소 외에 다른 분야에는 지원자가 없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신건강의학과의사 3명, 영상의학과의사 1명을 구하는 중인 서초구 소재 어린이병원과 정신건강의학과의사 4명을 비롯, 6명에 대한 채용 공고를 낸 은평병원은 빈자리를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채용 공고에 따르면 서울시 일반임기제공무원(의사)의 보수 지급 예상액은 연간 최소 7800만원에서 최대 1억4700만원이다. 의료업무수당, 직급보조비 등이 포함된 액수다. 성과 연봉은 별도다.
공공의료 인력난은 만성적이다. 지난 6월 기준 서울의료원은 정원대비 의사 39명, 간호사는 110명이 부족하다. 은평구 소재 서북병원은 의사가 19명 근무 중인데 이는 정원대비 59% 수준이다.
시는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병원별로 수시로 하던 채용방식을 상하반기 연 2회 정기 채용으로 바꿨다. 응시자들이 채용 일정을 예측하고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또 연봉을 최대 1억4500만원으로 기존보다 연 600만~5500만원씩 최대 40% 인상했다. 오 시장 지시로 이뤄진 조치였다.
오 시장은 지난해 취임 이틀째 코로나19 종합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서남병원도 서북병원도 의사 정원을 다 못 채우는데, 가장 큰 원인은 처우에 있다고 들었다”면서 “아낄 게 따로 있지 시민 건강을 챙기는 의료 인력이 정원을 못 채우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공공병원은 의사 수가 적어 업무 부담이 높을뿐더러 전문의로서 학회 활동이나 연구에 참여하지 못하는 등 근무환경이 열악해 의사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 특히 지방 공공병원은 의료인이 수도권과 대도시를 선호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농어촌 지역 의료원의 경우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공병원은 의료 취약계층의 안전망 구실을 한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기 환자 80%를 도맡기도 했다. 공공병원의 의사수 부족은 의료 서비스 질을 떨어트리고 의료사고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 지난해 시민단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국립대병원, 사립대병원, 지방의료원 등 102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공공병원에서는 “공중보건의사로만 운영하다가 (공보의) 수급이 끊겨 폐과했다”, “정형외과 의사 부족으로 물리치료실을 축소 운영하고 있다”, “심장내과, 신경외과, 호흡기내과 등 중증 필수의사인력이 부족해 지역주민이 타지역으로 이동해 진료받는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정부도 여러 대책을 내놨다. 보건복지부는 공공병원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21~2025)’에서 공중보건장학생과 공공임상교수제 확대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공공임상교수제 시범사업은 10개 국립대병원이 150여 명의 공공임상교수를 선발해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하는 사업이다. 공중보건장학제도 시범사업은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재학생 중 지원자를 선발, 공공보건의료업무에 종사하는 것을 조건으로 최소 2년부터 최대 5년까지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기획실장은 “연봉 인상이 공공병원 의사 부족을 해결하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자신의 성취도, 만족감, 미래 전망 등을 보고 의사들이 큰 병원이나 조건이 좋은 병원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나 기획실장은 “공공임상교수제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150명 모집에 겨우 12명이 지원했다. 아직 시범사업에 불과한데다 한시적 계약직이라는 불안정한 신분 탓이 크다”면서 “땜질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의료기관에서 사명감을 갖고 일할 의사를 처음부터 양성하는 등 공공병원에서 의사들이 장기 근무할 유인책에 대한 깊은 고민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